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yong Julie Sim Jan 31. 2017

#10.트래블메이트 편: 그와 나의 영원을 닮은 우정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34일의 아프리카 캠핑 여행

그와는 참 많은 멋진 순간들을 함께 했다.

샌프란시스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함께 페리를 타고 소살리토 섬을 여행했다.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허름한 라이브 재즈바에서 음악에 젖고, 맥주에 취했다.

언덕 꼭대기에 앉아 붉은빛이 도시를 서서히 삼키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기도 했다.     

아프리카,


장엄한 빅토리아 폭포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뛰었다.

새까만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별자리를 찾았다.

서른세 번의 비현실적인 일출, 초현실적인 일몰을 함께 보았다.   

*

그와 나는 서로를 친구 이상으로 정의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놀랍도록 편안하고 산뜻하다는 점까지 부정하진 않았다.

우리는 그런 친구였다. 

아름다운 공기 속에 함께 있을 때, 서로의 풍경을 그리고 시간을, 한층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친구.      

*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배려심이 깊다.     

대부분의 시간을 트럭에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이동 시간, 스르르 잠들었다가 일어나 보면 어김없이 내 머리에는 목베개가, 어깨에는 재킷이 놓여 있었다.


빵에서 시작해 빵과 고기로 끝나는 지극히 서구적인 식단에 물려 아시아 음식을 간절히 갈구하는 내게, 그는 아프리카 마트 구석구석을 뒤져 찾아낸 일본 컵라면 한 개를 사 와서 웃어 보였다.     


투어 그룹 내 유일한 동양인이면서 가장 영어가 서툴기도 한 나를 위해, 그는 늘 두 번씩 천천히 말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줄리도 예전에 그런 적 있대. 그때 나한테 한 얘기 모두에게 해 줘 봐, 줄리.”

종종 이렇게 슬쩍 서두를 떼며, 빠른 영어로 진행되는 무작위 그룹 잡담에 내가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세계 각국 악센트가 난무하는 영어를 듣고 말하는 것에 지쳐 ‘잉글리시 타임 오프’를 외치면, 그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에 잔잔한 재즈음악을 띄워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었다.

*

그의 배려를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24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가이드를 도와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그는 매일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식빵을 구웠다.     


줄 서서 순서대로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항상 마지막 차례였다. 늘 남들이 다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가장 먼저 나가서 맨 마지막 사람이 나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틀 내내 트럭 안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짐짝처럼 이동만 한 적이 있었다. 지친 사람들은 모두 가이드에게 화를 내며 불만을 늘어놓았는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가이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오늘 하루 우릴 위해 고생해 줘서 참 고마워요.”


사진 찍는 게 취미인 그는 항상 사람들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정작 본인은 없는 그의 카메라를 보고 짠한 마음에 그를 찍어 주곤 했는데, 내 카메라에 담긴 그는 늘 역동적인 자세로 나를, 혹은 누군가를 찍어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

그런 순간도 있었다.      


“사실 너에게 매혹됐었어."

그가 내게 말했던 순간.

괜찮았다. 과거형 동사가 들어간 문장은.      


“너에게서 가끔 내 옛 연인의 모습이 보였어.”

내가 그에게 말했던 순간.

괜찮았다. 그 무엇도 의미하지 않는 문장은.     


술을 덜 마신 쪽에서 “너 좀 취했나보네. 별이나 보자.”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랫동안 우정을 지킬 수 있었다.     

각자 살아온 날만큼 지난한 관계들을 거치면서, 활활 불타오른 뒤 이내 꺼져버려 결국 남보다 못하게 돼버리는 연애감정보다, 평생 어디에 있든 문득 생각나 편지 한 통 보내줄 수 있는 진한 우정이, ‘영원’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가깝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단어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그 무엇이 살면서 그리도 얻기 힘든 소중한 것임을, 우린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여전히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영원을 닮은 우정을 나누는, 그런 베스트 프렌드.  

   


그동안 아프리카 캠핑 여행 이야기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나누고 싶은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일단은 10회로 마무리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해보려 해요. (그 이유는 다음 편을 보면 아실거에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나눠볼게요.^^



아프리카 캠핑 여행 이야기

[아프리카 캠핑 여행 #0]프롤로그: 강렬했던 그 순간들

[아프리카 캠핑 여행 #1]샤워 편: 공포의 야외 찬물 샤워 10분    

[아프리카 캠핑 여행 #2]텐트 설치 편: 매일 두 번, 텐트와의 씨름     

[아프리카 캠핑 여행 #3]텐트 찾아가기 편: 내 텐트 찾아 삼만리

[아프리카 캠핑 여행 #4]이동 편: 아프리카 여행의 반은 이동

[아프리카 캠핑 여행 #5]식사 편: 캠핑생활 아침&점심 식사 및 설거지

[아프리카 캠핑 여행 #6]캠프파이어 편(1): 타르쌈 까띠 슘바이 노르마

[아프리카 캠핑 여행 #7]캠프파이어 편(2): 꺼져가는 모닥불 앞에서

[아프리카 캠핑 여행 #8] 대자연 편(1): 사막 한가운데에서의 황홀한 무성 영화 

[아프리카 캠핑 여행 #9] 대자연 편(2): 워터홀 극장

[아프리카 캠핑 여행 #10] 트래블메이트 편: 그와 나의 영원을 닮은 우정

매거진의 이전글 #9. 대자연 편(2): 워터홀 극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