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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주용 JulieSim Jul 23. 2016

#1. 샤워 편: 공포의 야외 찬물 샤워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34일의 아프리카 캠핑 여행

 매일 해가 뜨기 전인 4:30~6:00시쯤 고치 속에서 빠져나오는 누에처럼 슬리핑백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헤드랜턴을 찾아 켠다. 워시팩은 왼쪽 어깨에 메고, 갈아입을 옷과 스포츠 타월을 넣은 샤워백은 오른쪽 어깨에 바리바리 메고, 낑낑대며 뻑뻑한 텐트 지퍼 문을 열고 나와 쪼리를 끌며 샤워장으로 간다.  

이렇게 체인이 걸려 있으면 누군가가 이미 샤워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샤워장은 캠핑장에 따라 다른데, 대개 대나무로 엮어 만든 천장이 뚫린 칸막이에 물이 안타까우리만큼 쪼르르 흐르는 샤워기가 달려있는 모양새이다. 전등이 달려 있지 않아 완벽한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샤워장에는 거미, 도마뱀, 나방, 딱정벌레 등 온갖 생명체가 기거나 날아다니고 있기에, 차라리 피차 어둠 속에서 함께 있는지 모르는 채 샤워를 하는 편이 서로의 신상에 좋다.

샤워를 하다가 문득 위를 보면 이렇게 고양이가 째려 보고 있기도 하다.
국립 공원에 있는 샤워실에는 야생 동물의 습격을 막기 위해 이렇게 전기 울타리가 있다. 바로 옆에서 사자가 쳐다 보고 있을까봐 두려움에 떨며 샤워를 했다.


캠핑장 샤워실에서 따뜻한 물을 기대하는 건 사치인 경우가 많다. 설혹 운 좋게 따뜻한 물이 나온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오랜만에 머리에 영양 좀 줘 볼까?’하면서 샴푸 다음에 린스까지 처덕처덕 바르는 객기를 부렸다가는 10초 뒤에 다시 야속하게 나오는 얼음장 같은 찬물 세례에  이를 미친 듯이 딱딱 부딪치며 헹궈내야 한다.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새벽 어스름에 천장이 뚫린 샤워장에서 찬물로 샤워를 하는 그 10분은 꽤나 고통스러워서, 웬만한 캠핑 생활에 다 적응한 후에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간혹 시설이 좋은 캠핑장에서는 계속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어디서도 맛보지 못할 최고의 샤워를 즐길 수 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차갑고 신선한 공기 속에서 풀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들으며 뜨끈뜨끈 김이 나는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마치 몸속 장기까지 모두 깨끗해진 것만 같은 무한한 상쾌함이 밀려온다.     


자연친화적인 화장실
좋은 실내 샤워장에서는 이렇게 셀카를 찍어 보는 여유도 부린다.


찬물 샤워를 마치고 바들바들 떨면서 스포츠 타월로 물기를 닦은 뒤, 바디로션 따위를 바를 여유도 없이 후다닥 옷을 입는다. 그리고 캠핑 생활 내내 거의 한 몸처럼 입고 다니는 유니클로 초경량 재킷까지 입고 나면 그제야 좀 정상 체온으로 돌아온다.      


얼굴에 크림을 대충 바른 뒤, 스포츠 타월을 목에 두르고, 텐트로 향한다. 이때 겨우 좀 깨끗해진 발을 계속 깨끗하게 유지하려 최대한 노력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은 다시 모래 범벅이 되고, 때론 온갖 넝쿨과 가시에 찔리고 긁히기도 한다. 캠핑 생활을 하면 하루 24시간 중 발에 흙이나 모래가 묻지 않은 상태인 때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 전 한 5초뿐인 것 같다.




아프리카 캠핑 여행 이야기 예고편


[아프리카 캠핑 여행 #0]프롤로그: 강렬했던 그 순간들

[아프리카 캠핑 여행 #1]샤워 편: 공포의 야외 찬물 샤워 10분     

[아프리카 캠핑 여행 #2]텐트 설치 편: 매일 두 번, 텐트와의 씨름 (업로드 예정)      

[아프리카 캠핑 여행 #3]텐트 찾아가기 편: 내 텐트 찾아 삼만리 (업로드 예정)

[아프리카 캠핑 여행 #4]식사 편: 캠핑하면서는 무얼 먹나? (업로드 예정)

[아프리카 캠핑 여행 #5]이동 편: 여행의 3분의 1은 이동 (업로드 예정)

[아프리카 캠핑 여행 #6]캠프파이어 편: 타르쌈 까띠 슘바이 노르마 (업로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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