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34일의 아프리카 캠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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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에는 ‘워터홀’이라고 불리는 물웅덩이가 있고, 그 앞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대자연 속 천연 극장.
그 누구도 극장 규칙을 말해주진 않았지만, 누구나 약속이나 한 듯 매너 있는 관객이 된다. 입장을 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살금살금 걸어 들어와 조용히 앉는다.
이 극장은 공연이 시작하는 시간도, 끝나는 시간도 없다.
공연 스케줄도, 출연진도 정해져 있지 않다.
VIP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래 앉아 있는다고 원하는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면 된다.
오늘은 무슨 공연을 보게 될지, 설렘을 한 아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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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붓에 물을 흠뻑 묻혀 그라데이션 효과를 낸 듯 하늘과 땅의 경계가 옅어지며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새빨갛게 타 들어가는 아프리카 태양에 워터홀도 영롱하게 빛났다.
텅 비어 있던 무대에 배우가 홀연히 등장했다. 큰 귀를 앞뒤로 펄럭이며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은 코끼리였다. 그 뒤로 더 많은 코끼리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천천히 무대로 등장했다. 앙증맞은 아기 코끼리도 엄마 뒤를 따라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그 위로 철새들이 유유히 줄지어 날아갔다.
관객석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코끼리 가족은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코끼리가 코로 물을 마신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닌데, 실제로 내 눈 앞에 펼쳐진 그 광경은 어찌 그리 신비롭고, 경이롭던지...
뭔가를 마시는 인간의 모습은 대개 어딘가 멍청해 보이기 마련인데, 평화롭게 물을 마시는 코끼리의 모습은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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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4요소.
‘무대’는 대자연이었다.
‘배우’는 동물들이고, ‘관객’은 우리였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배우’고 동물들이 ‘관객’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마지막 요소, ‘희곡’은 없었다. 정해진 대본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 즉흥성이, 그 자연스러움이, 공연을 한층 더 빛나게 했다.
오늘의 공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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