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세계여행, 실리콘밸리. 그리고 그 후
책 <연금술사>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20대 내내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원했던 건 단 하나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그래서 무엇을 하면서 어디에서 살아야 행복할지를 찾아내는 것.’
결국, 제가 진정으로 바란 건 ‘행복해지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행복은 그저 마음속 깊이 원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촤라락 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엘리자베트 길버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행복에 대한 구루의 가르침을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복을 일종의 행운, 운이 좋은 사람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런 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은 개인적 노력의 결과다. 행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주장하고, 때로는 행복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기도 해야 한다. 자기 행복의 발현을 위해 무자비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 엘리자베트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녀가 말한 것처럼, 행복은 온 마음을 다해 원하는 만큼, 온몸을 던져 탐구하고 치열하게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행복이란 건, 단순히 티셔츠 사이즈 고르듯 누군가 만들어 둔 것을 대충 저에게 끼워 맞춰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에게 꼭 맞는 행복을 찾는 일은 오직 저만이 해낼 수 있는 과제였죠.
결국, 제20대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에게 최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옛말이 있죠?
그 말을 평생 듣고 한국 땅에서 솔잎만 먹으며 살아오던 평범한 송충이 한 마리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다양한 잎을 먹고 싶다는 너무나 막연한 꿈을 너무도 간절하게 꾸다가, 홀로 모험을 떠나 설사병도 앓고, 식중독으로 개고생도 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딱 맞는 참나무 잎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제 프롤로그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솔잎이 싫다던 송충이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솔잎보다 입맛에 더 잘 맞고 소화도 잘 되는 참나무 잎을 찾아, 이제는 더 행복한 송충이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도시, 그리고 7개월 동안 20여 개국을 돌고 나서도 결국 가장 마음이 이끌렸던 도시,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이 소소한 하루하루가 저는 참 좋아요.
일 년 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비도 거의 오지 않는 온화한 날씨 (바람은 많이 붑니다), 매일 동네를 조깅할 때 마주치는 환상적인 피어(Pier)의 풍경, 퇴근 후 15분만 운전하면 펼쳐지는 장엄한 오션 뷰… 이렇게 쉽게 아름다운 자연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낍니다.
또한, 책임감이 막중하지만 그만큼 무한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실리콘밸리의 업무 환경은 저와 꽤 잘 맞아요. 얼마나 치열하게 살지, 얼마나 여유롭게 살지, 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정말 매력적이죠.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뿜어내며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당연한 것’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렇기에 누구도 타인의 삶을 강요하지 않는 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일궈낸 제 삶을 ‘사회적 알람’이나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제가 원하는 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이 결정권과 자유가 제게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물론, 어디에 살든 일상은 반복되고 가끔은 무료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를 바라보면, 10년 동안 가슴속에 품어왔던 꿈의 도시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다시 웅장해지곤 합니다.
어제는 남편과 함께 오션 비치(Ocean Beach)로 일몰을 보러 갔어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위로 태양이 붉게 타오르며, 하루의 모든 열정을 불태우듯 마지막까지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우린 매일 이 Pacific Ocean 너머 한국을 바라보며 선셋을 보네, 그치?” 남편이 말했어요.
“그러게, 한국에선 반대로 태평양 너머 우리 쪽을 보면서 해가 뜨는 걸 보겠지.” 제가 웃으며 대답했죠.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태평양 너머의 삶을 꿈꾸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반대편에 서서 매일 한국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배웅하고 있어요.
일출을 바라보던 그 시절, 저는 항상 기대와 설렘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제 일몰과 함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 마음속에는 오직 벅찬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또 한 번,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고요하고 감사한 하루가 저물어 가네요.
제 프롤로그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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