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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Mar 11. 2022

이제 엄마를 위해 꽃다발을 사도 괜찮지 않을까?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 엄마에게도 봄은 오니까


올해 예순일곱. 우리 엄마 나이다.


시골에서 일곱 남매 중에 딸아이로는 맏이로 태어나 아픈 아버지를 돕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엄마를 돕느라 아홉 살부터 밥하고 집안일하며 오빠들 동생들 케어하느라 학교도 마음대로 못 다닌 우리 엄마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삼시세끼 밥밥 노래 부르고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고집불통 아빠의 시중을 들면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고 또 할머니를 돕는다고 나섰다. 우리 엄마는 요양보호사다.


젊어서는 사업하느라 매일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아빠와 사느라 가장 노릇을 하시느라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며 이내 한탄스러워하시는 엄마는 자신의 몸도 여러 군데 불편해하면서도 힘들어하는 할머님들을 찾아 부지런히 케어하러 가신다. 그런 엄마가 작년에 허리 수술을 하셨다. 간밤엔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 살고 싶었다고 하시던 엄마의 표정이 생생한데, 고새 또 까맣게 잊으셨나 살만해지시니 또 사부작사부작 일하러 가시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제발 일 하지 않고 편하게 사셨으면, 자신의 몸을 좀 아끼며 사셨으면 했다. 평생 고생만 하고 여전히 자신보단 배우자와 자식들을 위해, 또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9살부터 몸을 움직여 가족들을 돕고 평생 다른 사람 생각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엄마에게 일하지 않는 삶은 갑갑한 감옥과 같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딸에게 갖가지 반찬을 해주시느라 낑낑 장 봐서 바리바리 사주시느라 허리를 쓰시는 것보다 어려우신 할머니들을 돕고, 보람을 느끼며 용돈도 벌어 딸자식 손주 용돈 주는 재미를 느끼시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져드렸다. 다시 시작하는 엄마의 일 말이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면 매일 뭐 먹었는지 몸은 좀 어떤지 잠은 잤는지 내 걱정만 하시곤 했는데, 요즘은 매일 그 할머니 이야기만 하신다. 집에서 나물 무치고 잡채 하고 김치 담가서 매일 출근길에 할머니 조금씩 가져다 드리는 엄마인데도 오지 마라, 왜 또 왔느냐, 전기불 꺼라, 물 아껴 써라 잔소리하신다는 치매 할머니의 서운한 태도에도 엄마는 할머니가 자꾸 불쌍하다고 하신다. 가끔은 듣고 있다가 엄마가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 화가 나서 버럭 할 때도 있지만 열심히 마음 쓰고 애쓴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할머니에게 서운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지 않으셨을까 싶어 나라도 맞장구를 쳐준다.


아이고, 그 할머니 왜 그래. 엄마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집에 가서도 맛있는 거 보면 생각나서 음식을 만들어다 주는데 고맙다고는 못하고! 할머니 자기 복도 못 챙기시네!”

했더니 엄마는 이내 할머니 편을 드신다.

평생 아끼고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서 그래. 관리비 얼마나 나온다고 자식들한테 피해 갈까 봐 아끼고 또 아끼는 거라니까. 부모 마음이 또 다 그렇잖니. 그래도 엄만 상관없어 엄마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이렇게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벌고 몸도 움직이고, 엄만 그게 행복해. 얼마나 다행이야. 엄마가 돌볼 할머니가 계셔서.” 하신다.



세상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특별한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일 거야. -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중에서


아이들과 읽을 책에서 만난 문장이다. 어쩌면 누구나 기적이나 행운을 바라면서도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특별한 일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담아 특별함을 부여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엄마에겐 언제나 다행인 일이 참 많다. 엄마만큼 따뜻하지도 않으면서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용기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욕심만 내지 말고 엄마처럼 세상의 많은 기적의 순간을 알아볼 줄 아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나 먼저 더 넓고 따스한 마음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조화가 좋더라. 꽃이 너무 이쁜데 생화는 너무 금세 시들어 버리잖아. ”


평생 엄마를 위해 꽃다발 한 번 산적이 없었던 것 같다. ‘뭐하러 사 왔니, 너희들 아껴서 좋은 거 사 먹지’ 하시는 엄마의 잔소리가 무서워 매년 어버이날에도 생화 카네이션을 다발로 크게 사보지 못했다. 시들어서 아쉽더라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이 남아 꽃다발을 받아 든 그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기분을 엄마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어제 문득 꽃을 사러 생화 도매시장에 들렀다가 소매에서는 후들후들해서 작게 만들어진 다발만 사들고 오다가 한아름 품에 안기는 꽃다발을 사들고 나오는데 온종일 행복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연애할 때만 남편이 사주던 꽃다발이 전부였던 내 삶에 누군가가 주기만을 기다리며 꽃이 주는 행복함을 포기하고 살진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100원도 함부로 쓰지 않는 엄마지만 마흔 훌쩍 넘은 딸 보약 해준다고 매일 힘든 일을 참지 않고 하시는 엄마의 사랑을 쉽게 받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니 이번엔 내가 엄마를 챙겨야 할 차례이다.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 엄마에게 그 사랑 넘치게 받은 나라도 봄을 선물해야겠다. 고단하고 힘들었어도, 매일이 전쟁 같은 삶이었어도 엄마의 인생에도 봄은 와야 하니까.


이제 엄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거대한 꽃다발을 사도 괜찮지 않을까?


조화 말고 엄마가 진짜 좋아하는 꽃은 무엇일까? 매달 들고 찾아가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엄마 기다려요!


#꽃 #엄마 #엄마의봄 #내가지킨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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