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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Jun 09. 2023

고심하여 선택한 환경에도 변수가 있었다

영어뿐만 아니라 책도 안녕

환경이 바뀌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감성적인 아이에게 다가온 초등학교 입학은 그 당시 나에게 엄청 큰 두려움이었다.


학교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사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쭉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더 거대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전세로 이사 다니다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전학을 갈 순 없어.’ 날로 높아가는 전셋값도 무시하기 힘들었던 형편이어서 망설이고 부담스러워하는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발품 팔아 지역조사를 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인맥을 총 동원해서 이사가 가능한 지역을 골랐다.


결혼 7년 차, 거액대출이라는 부담을 안고 우리는 집을 장만했고 그렇게 살던 곳을 옮겼다. (그 과정을 한 줄로 쓰기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에서 시작된 엄청난 일들이 여전히 그 사이사이에 숨 쉬고 있지만, 어쨌든 생활환경이 좋은 동네로 이사했고, 우린 아직 그곳에서 잘 버텨내고 있다. )


이사하면 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더 큰 문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유치원! 말도 안 돼!


아이 6살 9월에 이사를 왔지만 당장 집 근처 유치원에는 자리도 없었고 이사 와서 낯선데 학기 중에 새로운 유치원에 들어가 부적응해서 힘들어하면 어쩌지? 이사 온 보람도 없이 그 여파가 오래갈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다니던 곳에서 수료하고 싶다는 아이를 말릴 수가 없었다. 등원시간 맞추느라 일찍부터 서둘러 아이를 준비해서 살던 곳까지 등원을 시키고 그 근처 친구들 집을 배회하다 영어과외를 하고 아이를 하원시켜 집으로 넘어오기를 꼬박 5개월, 어찌나 고생했는지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국제도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던 이곳에 가장 심각하게 부재중인 것은 바로 유치원이었다. 그 당시 사립유치원 딱 2개뿐이었으니 어떤 말이 필요할까.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서 입학설명회에 갔는데 이건 뭐 대학입시 수준이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접수를 하고 싶어서 대기를 걸었는데 정원 인원만큼 하고도 대기번호가 80번대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비용은 또 어찌나 비싼지 조금 더 보태면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수준과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붙어도 고민 떨어져도 고민,

이사하기 전보다 더 머리가 무거워졌다.  


지역 내의 모든 병설 유치원에 원서를 냈다. 아침에 아이를 먼저 살던 동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왕복 1시간 이상, 다시 동네로 와서 몇 달간 병설유치원을 배회하고 다녔다. 게다가 가기 전에 집에서 공 뽑기 연습을 해야 할 정도로 똥손이었던 나는 뽑는 족족 불합격 소식을 만났다.


그러다 극적으로 집에서 20분 거리의 한 병설유치원에 남편을 보냈다. ”내가 가서 뽑으면 모두 불합격이니 이번엔 제발 당신이 다녀와!” 한 번에 합격 소식을 가지고 온 남편, 기쁨도 잠시 결국 라이딩을 피할 수 없다며 좌절하고 있었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다짐을 하고 우리 아파트 앞 병설유치원에 갔다. 기대도 안 했는데 한 번에 당첨이 되었다. 무려 아이가 입학할 학교 병설유치원이라니 그간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엄청 좋아했다. 고민도 없이 남편이 뽑고 온 유치원을 포기하고 집 앞 병설유치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싶었다.


그 반가움도 잠시, 아이는 매일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사립유치원에 다닐 때는 다양한 특별활동도 많았고 무엇보다 급식 걱정이 없었던 아이였는데 병설유치원에 가니 학교와 별다를 게 없는 환경, 급식실에 가서 먹기 싫은 반찬들을 먹어야 하는 괴로움, 그리고 심심함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 권의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고, 스스로도 매일 책무덤에 살았었던 아이. 무엇이든 안 함보다는 함이 좋아 뭘 더 하자하자 했던 적극적인 아이였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밤 8-9시까지 놀다가 들어와도 자기 직전까지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던 아이가 천천히 변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아무것도 하기 싫은 아이가 되어 갔다.


그중에서도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아이가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제일 좋아하던 시간은 바로 놀이로 하는 영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일곱 살 유치원 교실에서 배우는 영어 프로그램이 맞지 않았고, 선생님이 조금 무서우셨는지 매일 영어 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엔 급기야 소리치며 말했다.

 

“엄마, 난 이 세상에서 영어가 제일 싫어.”


지난 나의 6년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영어하나만은 좋아하게 키우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순간, 아이는 자연스럽게 영어책 읽기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한글 읽기도 소홀해졌다. 그 빈자리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일이 있었다. 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니며 학교 도서관에 자주 방문했고, 거기서 읽는 만화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육아는 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특별한 선물 같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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