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의 푸드오디세이>
실제로 발을 내딛기 전까지 내게 영국이란 나라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아틀란티스와 다름없었다. 유럽에서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형편없다는 오명을 가진 나라, 전 국민이 맛없는 음식을 감내하는 나라라니. 아틀란티스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그 동안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오가며 먹어왔던 음식을 생각하니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영국 요리유산의 빈곤함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게 '피시앤드칩스'라고 알려져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운영하며 전 세계 부를 빨아들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기껏해야 기름에 튀긴 흰 살 생선과 감자라니. 대체 영국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피시앤드칩스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반죽을 입혀 튀겨낸 생선과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요리다. 영국식 피시앤드칩스는 소금이나 신맛이 덜한 몰트 식초를 뿌려먹는 게 정석으로 통한다. 곁들여 나오는 마요네즈나 케첩은 피시를 위한 게 아니라 칩스를 위한 조미료라는 게 영국인의 설명이다.
튀김에 식초를 뿌린다는 게 우리 생각으론 어색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가까이 보면 우리가 먹는 튀김용 간장도 사실은 약간의 식초를 첨가해서 만들지 않던가. 몰트 식초는 보리로 만든 식초로 일반 식초보다 신맛이 날카롭지 않아 생선 튀김의 맛을 많이 해치지 않고 오히려 감칠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대개 진짜 몰트 식초보다는 아세트산 식초에 캐러멜을 섞어 만든 값싼 유사 몰트 식초를 사용한다. 상표 없는 투명한 병에 들었거나 식초(Vinager)란 이름 대신 '피시앤드칩스 용 소스'라고 적혀있다면 십중팔구 유사 몰트 식초라고 보면 된다. 유사 몰트 식초는 몰트 식초보다 신맛은 덜하고 감칠맛도 덜하다. 특별히 나쁠건 없고 오히려 몰트 식초보다 유사 몰트 식초의 맛을 더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피시앤드칩스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발간된 관련 자료를 교차 비교해 보면 대략 1860년대를 전후로 탄생한 음식이라는 데엔 다들 동의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전국 생선 튀김 업자 연합’(NFFF)이란 것도 존재하며 무려 1913년 결성됐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피시앤드칩스 전통 유지와 보호를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국외 수출 판로 개척, 컨설팅 교육, 업자 권익 보호 등 사실상 하나의 산업진흥의 역할도 하는 나름 권위있는 조직이다. 이들이 주축이 돼 2010년에 피시앤드칩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생선튀김은 언제부터 감자튀김과 한 배를 타게 됐을까. 생선을 밀가루 반죽이나 계란옷을 입혀 튀겨내는 방식은 전통적인 유대인의 조리법이다.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게토 지구에는 생선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금처럼 튀겨낸 후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일종의 보존을 위한 전처리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생선튀김과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은 튀긴 생선을 식초물에 담가 먹었는데 이렇게 하면 냉장고 없이도 1년 정도 보관이 가능했다.
감자튀김은 19세기 초중반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유행했다. 서로 원조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찌되었건 감자튀김은 저렴한 길거리 음식으로 꽤 유행했고 영국에서도 감자튀김만 파는 노점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생선튀김에 빵이 얹어 나왔지만 밀가루 값이 오르자 생선튀김의 짝이 저렴한 감자로 대체되면서 피시앤드칩스가 탄생했다.
고온의 기름에 튀겨 빠르게 만들수 있는 피시앤드칩스는 패스트푸드로 각광을 받았다. 피시앤드칩스에 열광한건 주로 노동자 계층이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노동자 계층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값이 저렴한 피시앤드칩스는 좋은 식사 대안이었다. 여기엔 당시 증기 트롤어선이 등장해 어획량이 급격히 늘고, 철도가 항구와 도시를 촘촘히 잇게 되면서 신선한 생선의 공급이 원활해졌다는 배경이 있다.
간편함도 한 몫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집에서 요리하는 걸 감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식재료를 준비해 장만하는 노력이 만만찮았고 연료비도 충분치 않았다. 이들에게 저렴하면서 금방 조리돼 나온 피시앤드칩스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맛과 영양에 있어서도 피시앤칩스는 큰 이점이 있었다. 그 동안 해안가에 살거나 강가에 살지 않는 이상 일반인들이 신선한 생선을 먹기란 쉽지 않았다. 내륙에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거나 식초에 절인 보존식품으로 생선을 접해왔는데 갓 튀긴 신선한 생선의 맛에 쉽게 열광했다.
또 적은 비용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고열량 식품이기도 해 몸을 쓰는 노동자들에게 훌륭한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돼지기름인 라드에 생선과 감자를 튀겼다고 하니 우리가 치킨에 열광하는 것처럼 쉬이 거부할 수 없는 맛이었으리라 추측될 따름이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피시앤드칩스의 인기는 크게 치솟았다. 1921년 2만 5천 개였던 피시앤드칩스 가게는 6년 후 3만 5천 개까지 늘었다. 우리나라의 치킨집처럼 큰 자본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창업이 용이한 아이템이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너도 나도 대박을 꿈꾸며 자영업에 뛰어든 것이다. 한때 영국에서 생산되는 감자의 10%와 흰살생선의 30%가 피시앤드칩스로 소비됐다.
노동자의 간편식이었던 피시앤드칩스는 1960년대까지 인기를 누리다가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1930년대까지 3만개가 넘던 피시앤칩스집은 2003년 8천 여개로 감소했다. KFC나 맥도날드, 중국식 누들이나 인도식 카레 등 노동계급이 선택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음식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감소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피시앤드칩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된 데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파니코스 파나이는 외국 음식의 홍수 속에서 영국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마케팅 도구로 피시앤드칩스가 이용됐다고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피자, 미국의 햄버거 등에 대항해 영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여기엔 자부심과 일종의 자학적인 냉소가 섞인 영국인 특유의 이중적인 성향이 한몫 거들었다. 하찮은 음식이 영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를 대놓고 부끄러워하지는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피시앤드칩스를 비롯해 영국을 대표하는 일련의 음식을 맛보고 난 후 조심스럽게 내린 결론이 있다. 영국인에게 맛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맛있는 음식이 어떤 음식이라는 건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영국인이 아니고서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당연히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조차 문화적인 편견일 수 있겠다는 큰 깨달음을 영국에서 얻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