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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Nov 27. 2018

장모님과 김장을 담그며

김장은 꼭 여성의 역할이어야 하는가



꼭 한번은 경험해보고 싶었던 김장이었다. 명색이 음식 관련 일을 한다는 사람이 김치 한번 안 담가봤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거니와 외국에서 누군가 김치 어떻게 담그냐고 물어볼 때면 말문이 막힌 경험이 종종 있었다.


마침 장모님이 직접 재배한 배추로 김장을 담근다는 얘기를 듣고 기회다 싶었다. 그렇게 장모님과 이모님 그리고 김장 초짜 사위 셋이서 김장을 시작했다.

우리가 김치라고 부르는 이 고추가루 양념에 절인 배추는 가정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배추와 고춧가루, 소금이라는 문법 안에서 지역에 따라 또는 가장의 취향에 따라 양념의 세부 레시피가 가지를 뻗어나간다.


처가댁에서 사용하는 양념은 고춧가루, 마늘, 생강, 새우젓, 멸치액젓, 매실액, 찹쌀풀, 청각가루. 경북이 고향이신 장인어른의 취향에 맞춰 일부는 멸치젓을 넣어 만든다고 하신다.

이날 김장의 주된 화제는 '염도'였다. 배추가 짜니 양념은 덜 짜게 해야 한다는 장모님과 그래도 양념이 더 짭짤해야 하지 않냐는 이모님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와중에 장모님 말도 맞도 이모님 말도 일리가 있다며 박쥐 노선을 타던 사위는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었다. 김치는 짜야 하나? 덜 짜야 하나?

김치의 염도가 달라지면 식탁에서 역할도 바뀐다. 달고 시원하고 짜지 않은 김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단품요리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힘이 있다.



짜고 강렬한 김치는 식탁에서 반찬과 밥맛을 돋구는 피클의 역할을 한다. 대신 많이 먹을 수는 없다. 전통적으로 김치는 전자의 역할이었던가 후자였던가.


예송논쟁만큼이나 치열했던 염도논쟁은 종국엔 조금 덜 짜게 먹는게 건강에도 좋지 않겠냐는 방향으로 극적 타결됐다.


김치 속을 바르는 고단한 와중에 재료에 관해 이것저것 여쭤볼 기회가 있었다. 왜 이런 재료를 사용하시고 이런 스타일로 김치는 담그시냐고.


전남 광주가 고향이신 장모님과 이모님은 그대들의 어머님이 담그신 김치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님은 이런 방식으로 하셨네, 어머님도 어디서 배우신 거네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음식 유산과 맥에 대한 상념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장모님께서 김치를 담가 친지분들께 나눠 드리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 맛을 기억하고 재현하고 이을 수 있는 자녀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집에서 직접 김장한 김치가 집에서 담근 장 만큼이나 귀해지지 않을까.

김장하는 가정이 줄고 있다는 건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김장을 주로 하던 이들이 여성이었는데 변해가는 여성의 가정내 지위나 양성평등을 근거로 김장 문화를 계승할 여성들이 줄어든 게 문제라는 진단을 내리는 기사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남자들이 김장을 도와주지 않아서, 여성들이 김장을 안 하려고 한다는 성역할의 문제라기보다 한 가정 구성원들이 음식 유산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깨닫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음식은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먹어왔던 맛을 내 자녀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다는 마음. 음식이란건 단지 주린 배를 채우고 입을 즐겁게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김치를 만들며 내 어머니의 맛, 장모님의 맛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고 싶다. 우리의 부모님이 그래왔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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