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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May 12. 2021

인생 막걸리를 만나다

맛 기행


어제 남편과 집 근처 식당에 갔다. 그곳에는 많은 수제 맥주와 소주가 파는 곳이다. 술을 종업원에게 주문하는 게 아니다. 손님이 직접 술 저장 냉장고에 가서 찬찬히 살펴보고 꺼내오면 된다. 냉장고 옆에 다양한 잔이 놓여있다. 내가 고른 술과 어울리는 잔도 직접 고르면 된다. 술값은 나중에 식탁 위에 남겨진 빈 술병 숫자를 보고 계산한다.


여러 가지 술을 마셔봤지만 이번엔 생막걸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 식탁에 있는 막걸리병을 보면서 모양이 참 섹시하고 근사했다.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보통 슈퍼에서 파는 지평막걸리나 서울막걸리와 모양가 크기부터 달랐다. 날씬하고 길쭉한 모양새가 막걸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그 모양이 손에 쥐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는 순간 종업원이 놀란 얼굴로 갑자기 다가왔다.


"이 술은 저희가 준비해서 드릴게요. 잔도 직접 갖다 드릴 거구요"


'한 병에 2만 원에 파는 막걸리라서 서비스가 남다르다고 여겼다.'


잠시 후에 사장님이 술잔과 술병을 들고 오셨다. 뭐라 뭐라 술에 대한 설명을 하셨지만 식당 안 손님들 말소리와 섞여서 잘 들리진 않았다.



막걸리를 먹어본 사람들은 막걸리 뚜껑을 어떻게 여는지 알 것이다. 첫째 세차게 흔들어서 밑에 가라앉은 찌꺼기가 위에 말간 술과 섞이도록 한다. 다음에 뚜껑을 조심스레 따서 술이 넘치지 않게 한다. 하지만 복순도가 생막걸리는 술병을 잡고 살짝 흔들면서 뚜껑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따기 시작했다. 뚜껑을 다 열릴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장님이 드디어 개봉해서 기다란 와인잔에 술을 따라주었어. 기다린 만큼 막걸리 맛이 기대됐다. 와인잔에 따라준 거라서 왠지 와인 마실 때처럼 흉내내기가 절로 되었다. 잔을 가볍게 휘 흔들어보고 나서 한 모금 마셨다.

막걸리 맛이라기보다는 과일향이 퍼지면서 새로운 술을 맛보는듯했다.


보통 막걸리는 벌컥벌컥 마셨다. 이건 조심스레 한 모금씩 목안으로 흘려보냈다. 톡 쏘는 맛과 과일향이 어우러졌다. 마치 스파클링 와인과 비슷한 맛이 났다. 마지막에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이 입안에 남았다. 술이 들어가니 안주가 당기는 것은 당연하겠지 안주로 시킨 돈가스에 자연스레 젓가락이 갔다. 얼큰하고 알싸하며 달큰한 술맛과 기름지고 느끼한 돈가스 궁합은 기가 막혔다.








와 이건 인생 술이로구나!
취기가 올라오면서 의자에 등을 자연스레 기댔다.
마주 보고 앉아있는 남편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막걸리 한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행복이었다.
그 순간 내 인생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구입가도 조회했다. 한 병에 1만 2천 원에 팔았다. 집에 몇 병 쟁여두고 선물해주고 싶은 술이다. 한 병을 말끔하게 비우고 남편과 술집을 나왔다. 딱 한 병으로 배도 채우고 기쁨도 채울 수 있었다. 더 마시면 첫 번째 마신 행복감이 사그라 들것 같고 취기만 남을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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