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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Sep 01. 2021

그냥 조금만 더 다녀봐

더 버티라는 엄마의 말


엄마!


두 번째 보내는 편지네. 편지로 쓰려니 평범한 말도 쑥스럽게 다가오는듯해. 참 이상하지? 


오늘은 무슨 일을 써볼까 고민하다가 내가 직장 생활할 때 엄마랑 통화했던 순간이 떠오르더라.




난 처음 직장을 대기업에 들어가서 너무 좋았어. 엄마도 물론 기뻐했고. 드디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기뻤어. 대기업이라 그런지 첫 월급이 생각보다 많더라. 난 별로 소비를 하지 않는 타입이라 그런지 저축하고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에 돈을 써도 넉넉하더라. 내가 벌어서 알아서 모든 소비활동을 하는 게 가장 신기했어.




직장 첫해에 발령이 난 곳은 수원지사였지. 자취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왕복 3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곳이었어. 먼 거리쯤은 나에겐 그다지 힘겨운 게 아니었어. 이제 막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까짓 어려움쯤은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후에 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다가 영업부서로 발령이 났어. 담당 지역 대리점을 순회하면서 사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실적을 올릴만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지. 사무실에서는 아침에 얼마나 주문을 넣을 수 있는지 보고를 하는 힘든 회의로 시작했어. 부서장이 만족할만한 공허한 숫자를 내뱉고 나는 차를 이끌고 대리점으로 돌았어. 




어떤 때는 너무 일이 부담되어서 아무 곳에 차를 두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있었어. 엄마! 난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리드하는 게 늘 버거웠어. 그래서 늘 듣는 것에 충실했어. 무슨 질문을 던져서 상황을 부드럽고 유쾌하게 흘려보내야 할지 막막했어. 


엄마는 적절한 농담과 경청으로 주위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았잖아. 동네 엄마들도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를 존중한다는 인상을 받았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고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항상 엄마는 당당해서 든든했어. 





하지만 난 사장님 앞에 있으면 입이 떨어지질 않는 거야. 처음부터 딱딱하게 일 이야기부터 할 수은 없었어. 다른 영업사원들은 세상 사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가더라. 그저 부럽기만 했어. 






난 정말 적성에 맞질 않는 일을 하느라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어. 그러다가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 




“엄마, 나 회사 그만두고 싶어”


“왜?”


“너무 힘들어”


“그냥 조금만 더 다녀봐.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






“알겠어”




난 두 번도 말하지 않고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잖아. 엄마 기억나?


근데 엄마가 더 다니라고 말하는 순간 좀 서운했어. ‘힘들면 언제든 엄마한테 와’ 하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어. 




하지만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고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에게 가더라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깐. 엄마에게 기대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언니들이랑 오빠 모두 본인들이 알아서 각자 일터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바로 맘 접었어. 내가 돈 벌어서 엄마 살림을 보태주진 못하더라도 엄마 용돈이라도 챙겨드리는 게 내 의무라고 여겼거든. 




엄마랑 전화 통화 이후 다시 일터로 돌아가 묵묵히 다녔어. 회사에서 별다르게 튀는 실적을 내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갔지. 시간이 지나니 부서이동을 하기도 하고 다닐만했어. 그러다가 IMF가 닥치면서 좋은 직장은 나올 수밖에 없었지. 




엄마. 난 그때 엄마가 경제적 문제로 내가 어떻게든 직장에서 버티라는 것인 줄 알았어.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크고 내 나이가 어느덧 그때 엄마 나이를 먹어보니 내가 엄마 마음을 다 알지 못했던 것 같아. 



내 아이들도 힘겹게 공부하고 대학을 가고 언젠가는 자기 일을 하겠지. 그러다가 분명히 일을 할 때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거야. 그렇다고 바로 일을 그만두면 얼마나 속상할까? 본인도 그렇고 엄마인 나도 그렇고. 


그리고 내가 지금 일이 없이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점점 인생이 허탈하고 내 존재감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어. 아마 엄마도 일을 하고 싶지만 집에 있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을 거야. 난 어릴 적 엄마가 늘 집에서 날 반겨주는 게 정말 좋았거든. 하지만 엄마는 뭔가 경제적 활동을 갈망했었지. 엄마는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만은 꼭 바라는 바대로 살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그러니 내가 직장생활을 가능하면 오래 하길 원했겠지. 




나도 내 아이들이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탄탄히 자리 잡고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어. 예전에 난 손주들 키워줄 생각 안 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어. 내 아이들이 일을 계속하는데 내가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해주고 싶네. 




엄마도 내 첫아이를 키워주겠다고 우리 집에 왔다가 갑자기 암 발병으로 그리 하진 못해지만 그때 엄마 맘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엄마! 지금도 하늘에서 내가 사는 모습 잘 보고 있어? 지금이라도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당당하게 살아가면 엄마는 더 좋을 것 같아. 내가 엄청나게 성공해서 혹시라도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TV에 출연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엄마. 나 멋져? 다 엄마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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