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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Sep 06. 2021

성실함도 능력이다.

내 딸에게 있는 탁월함

엄마!

이렇게라도 불러보니 엄마가 내 옆에 살아있는 것 같아. 엄마에게 보내고 싶은 기억의 편지들을 10개 정도 리스트를 나열해봤어. 근데 오늘은 옛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지가 않네. 그냥 지금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내 지인은 엄마랑 매일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많이 떠나봐. 주로 친정엄마의 푸념을 듣는 거지만. 왜 그런 것 있잖아. 나이 들면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처음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샛길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들 말이야. 어느 정도 든다 보면 아무 의미 없이 대답만 하고 있기도 하지. 나도 엄마랑 그런 수다스러운 통화를 하고 싶네. 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스타일도 아니라서 그런지 마음속 고민이나 생각들을 쉽게 털어내질 못하네. 오늘은 내 푸념을 좀 들어줘.







큰아이가 지금 고3이야. 수시 원서를 써야 하는 시기가 왔어. 공부는 잘하는지 궁금하지? 중학생 때까지는 곧잘 하더라. 늘 성실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서도 열심히 공부했어. 학교 생활도 충실했고. 그런데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질 않아. 고3 기간에는 죽을 둥 살 똥 공부하고 있어. 적어도 남편과 내가 보기엔 말이야. 1등급 아이들은 아마도 훨씬 열심히 하겠지. ㄱ등학교 공부는 머리도 좋으면 좋겠지만 성실해야만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건 나도 인정해.




© nguyendhn, 출처 Unsplash






그런데 엄마! 내 아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 짠해. 많은 부모가 자기 자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거야. 뭔가 해보려고 부단히 애쓰는데 결과가 보상해주지 못하니 얼마나 힘들까? 내 생각에도 참 노력에 비해 성적이 너무 안 나오는 거야.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 모두 울 아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셔. 분명히 좋은 성적이 나올 거라 디 대할 만큼 열심히 하는 아이거든. 제대로 맘 편히 놀아보지도 못했고 이동 중에 단어장이라도 꼭 손에 쥐고 다니는 아이거든. 물론 결과는 거짓말을 안 하겠지. 


얼마 전에 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라


"엄마! 다른 애들은 너무 쉽게 성적이 나오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한테 세상은 너무 쉬워 보여. 정말 나한테 세상은 불공평하게 느껴져.

 지금 보나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이렇게 말하는 아이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 내가 보기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게 보이는데 어쩌면 이렇게 보상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 매일같이 검은색 티셔츠와 바지만 입고 다니고 머리도 제대로 빗어보질 못하고 피곤에 절어서 도서관이나 학원으로 다니는 아이한테 내가 뭐라 더 채근을 하겠어? 

나도 가끔은 '세상 불공평하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어.' 그렇지만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그렇게 아이한테 말해줄 수 없는 노릇이잖아


남들보다 좀 더 높은 집중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을 거고. 멋지게 타고난 외형과 좋은 성격으로 주위의 관심을 받는 사람 들고 있겠지. 머리 좋은 사람도 있을 테고. 솔직히 부럽기도 하지. 이런 면을 타고 난 사람들이.


힘들게 시험이라는 고개를 넘는 날 아이는 우울하고 눈물 날 듯한 시간을 보내곤 해. 그러고 나서 다음날 다시 처음처럼 묵묵히 공부에 몰두해. 너무 요령 있게 쉬질 못해서 그게 문제일 정도야. 본인이 그러더라.


"엄마! 난 힘들다가도 빨리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밥이라도 맛있게 해주자. 밝은 목소리로 아이를 맡아주자'라는 다짐만 해

엄마 큰 아이한테 타고난 능력이 있긴 해


내 아이한테는 성실함이란 게 있어. 아무에게나 있지 않은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다시 일어서서 제자리로 갈 수 있는 능력이면 세상 살아갈 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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