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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Oct 02. 2021

나도 최신 유행 블라우스를 입었다

엄마가 사준 새옷

소맷동은 팔꿈치까지 길게 올라왔고, 그 위로 아름답게 부푼 볼록한 소매가 작은 주름 단과 갈색 실크 리본 매듭으로 나뉘어 있었다.
-빨강머리 앤-



엄마!

요즘 '빨강머리 앤'을 읽고 있어. 어릴 적에 일본 TV 만화를 보면서 늘 앤은 동경의 대상이었어. 얼굴은 주근깨 투성이고 빨간색 머리칼을 지닌 앤이 부러웠어. 왜냐고? 늘 상상의 세계에 살았으니깐. 그리고 수다스러운 모습도 나와는 전혀 다른 면이었지. 


앤이 어릴 적 늘 입고 싶던 원피스가 있었어. 어깨가 볼록하게 솟아오르고 속치마가 풍성하게 들어가서 치마가 넓게 펼치는 것이었지. 앤의 보호자인 마닐라 아주머니는 사치스럽다면서 그런 옷은 필요 없다고 하셨어. 그런데 매튜 아저씨가 일을 저질러버렸지. 앤이 간절히 원했던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 옷을 마련해주셨지.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치 내가 '앤'이 된 듯 기뻤어.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 그때 아이들 사이에 엄청나게 유행이던 옷이 있었어. 하얀색 블라우스인데 면 재질인 듯해. 흰색 실로 수가 놓여 있고 어깨 부분에 주름을 넣어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모양이었어. 수 놓인 모양이 화려할수록 비싼 옷이었던 같아. 아래에는 반바지를 입었어. 마지막으로 중요한 코디 중 하나가 반타이즈였어. 무릎까지 오른 반타이즈를 신으면 최신 유행의 완성이었어. 타이즈는 면 혼방이 많이 들어간 게 좋았어. 저렴한 제품은 나일론이 많이 섞인 거지. 그때 나는 면인지 나일론이지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육안으로 봐도 어떤 게 비싼 건지 구분을 할 수 있었지.

평소에 엄마한테 옷을 사달라고 졸라본 적이 많이 않았잖아? 그런데 그때 그 옷이 너무나 입고 싶었어. 나만 빼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입고 다니는 것처럼 느꼈어. 

지금 애들이 '엄마 나 빼고 다른 애들은 모두 최신폰이야'라고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처럼 나도 엄마에게 졸랐지. 엄마는 당연히 안된다고 하셨어. 집안 형편상 최신 유행 스타일 옷을 매번 입을 수는 없었으니깐. 몇 번 얘기 해보고 난 포기했어. 


그런데 시간이 흘러 엄마가 내가 원하는 블라우스랑 타이즈를 사주신 거야. 새하얀 블라우스에 수가 예쁘게 놓여있었어. 특히 어깨 주름까지 들어가서 화려함까지 장착했지.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부드러운 느낌의 타이즈였어. 늘 탄력성이 부족한 타이즈를 신었는데 그때 새로 사준 것은 쫙쫙 잘 늘어나더라. 엄마가 사준 블라우스랑 반바지에 타이즈가 완벽하게 입고 학교엘 갔어.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나도 남들처럼 차려입고 가니 자신감까지 올라간 것 같았어. 막내이 다보다 언니들 옷을 물려 입는 경우가 다반사였잖아. 나만을 위한 새 옷은 무엇보다도 나만을 위한 것이었어. 싸구려 티도 안 나고 고급스러움까지 더한 옷을 입은 거야. 그때는 명절에나 옷 한번 얻어 입던 때라서 특별함은 더했지.


그런데 엄마가 그 옷을 사준 때는 유행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을 때였어. 그래서 그런 스타일로  입고 다니는 애들이 많진 않았어. 그리고 난 또래보다 머리 하나 크기만큼 키가 커서 다른 애들만큼 귀엽지가 않더라. 그래도 상관없었어. 엄마가 날 위해 유행하는 옷을 마련해줬다는 게 가장 큰 의미인 거야. 난 절대로 엄마가 사주질 않을 거라 생각하고 포기했지만 엄마가 소원을 들어준 게 행복했어.

나는 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서 2년 동안 입기 힘들었지. 그래서 그 옷도 다음 해에는 입지 못했던 것 같아. 


엄마! 난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기분 좋아. 엄마가 사준 최신 유행 블라우스와 타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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