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주는 엄마 품
엄마,
내가 막내여서 그런지 난 늘 엄마랑 스킨십을 자주 했었지. 스킨십이라는 단어가 왠지 어울리지 않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영어식 표현이 아닌 뭔가 다른 정감 어린 한 단어를 떠올려보려 하는데 잘 안되네.
어릴 적이면 난 엄마 가슴을 자주 만지작 대곤 했지. 엄마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엄마 등에 내 몸을 찰싹 밀착시키며 내 팔 한쪽을 엄마 배 위에 올려놓았잖아. 그렇게 하면 엄마의 둥그렇게 올라온 배가 마치 쿠션처럼 편안함을 줬어. 그러다가 스르륵 엄마 따라 잠들기도 했고. 엄마 배를 쓸어내리기도 하고 엄마 젖가슴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지.
그럼 엄마가 내 손을 찰싹 때리면서
엄마; 이놈의 가시네가 고만 좀 만져!
나; 알겠어
라고 바로 답하지만 곧바로 내 팔은 엄마 배 위로 떡하니 올라가 있곤 했어. 엄마 등을 통해서 전달되는 엄마 숨소리를 들으면 온 몸이 나른해졌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엄마 숨결을 느끼고 싶기만 했지.예전에는 가족들이 모두 방 하나에서 모여 살던 시절이라 서로 살을 부대낄 일이 많았건 것 같아. 그리고 방바닥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면 서로 바닥에 뒹굴게 되는 시간도 많았었고.
딸애들과 사이가 좋아서 길가에서도 손을 자주 잡고 다녀. 큰 녀석은 워낙 간지럼을 많이 타서 지 몸에 손이라도 가까이 가져가면 자지러진다니깐. 작은 녀석은 막내라서 그런지 중학생이어도 여전히 귀여워. 그래서 아침에 기상 뽀뽀는 꼭 하고 수시로 얼굴에 입맞춤을 해도 어색하지 않아.
엄마, 그런데 울 애들은 예전의 나처럼 내 배를 문지르는 스킨십은 하질 않아. 같이 눕게 되면 내가 아이들을 꼭 안아주곤 하지. 소파와 침대 생활을 해서 그런지 같이 아이들과 함께 누울 일이 내 어릴 적만큼 많지는 않아. 각자 지들 방이 있어서 각자 독립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하고.
엄마.
불룩 튀어나온 내 아랫배를 바라보면 어떻게 뱃살을 뺄까라는 생각을 해. 나도 아이 둘을 낳고 중년에 이르니 뱃살이 남들 부럽지 않게 나왔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식단관리를 하면서 뱃살이 더 나오지 않게 신경은 쓰고 있어. 배가 전혀 나오지 않는 날씬한 몸매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야. 그저 청바지를 입었을 때 좀 이쁘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 하는 거지. 그러다가 엄마 뱃살을 문득 떠올려. 엄마도 그 당시 다른 엄마들처럼 늘어진 뱃살이었지. 아이를 넷이나 낳았으니 뱃살이 늘어지는 건 당연하지. 점점 나도 나이가 먹어보니 근육은 없어지고 탄력이 사라지는 내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 그래서 운동은 조금씩이라도 하려고 애쓰고 있어. 점차 중년이 돼가니 운동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져. 즐기기까지는 힘들지만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계속해서 해나가야 하는 게 운동이라고 생각돼. 그래서 헬스나 요가를 계속하고 있어.
엄마는 지금의 내 뱃살보다 더 나왔지만 예전에 나는 엄마가 뚱뚱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그저 만지고 싶고 기대고 싶은 공간이었어. 엄마 살결이 유난히 부드럽고 깨끗했잖아. 말로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살결을 통한 교감은 더 큰 이야기를 하곤 해. 서로 살을 비비고 있으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서로의 맘을 문질로 주는 듯해. 참 이상하지? 왜 이성 간에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걸까?
직장 다닐 때 휴가를 내서 엄마를 보러 가면 방바닥에 둘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 품 속에서 자면 그게 그렇게 좋았어. 내가 워낙 스킨십을 좋아하는 건가? 언니 오빠들에 비해 유난히 엄마 품속에 많이 안기는 경우가 많았어. 막내라서 더 그랬나 봐. 지금도 살다가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일들이 가끔 벌어지면 엄마한테 달려가고 싶어. 엄마 속상할까 봐 차마 다 털어놓지 못하더라도 그냥 엄마 품 안에 안겨서 낮잠 한숨 자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