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체'와 '없는 체'

잘난척과 궁상 사이

by 느리게걷는여자

2017. 2. 21. 쌀쌀함

오늘 책을 읽다가 '없는 체'하는 인간도 사람들이 기피하고 싶은 유형 중 하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지금까지 '없는 체'가 '겸손'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종종 '없는 체'하는 게 '미덕'이라 여기며 행동해 왔다.

한편으로는 '없는 체'만 하면서 살아왔던 건 아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과거의 행동들을 떠올리다보니 '있는 체'했던 경우도 많았다. 특히 철모르던 시절, SNS에 남편이 나에게 해준 선물이나 이벤트 따위를 지인들에게 공개하곤 했었다. 한 마디로 '나 사랑 받는 여자에요~'라고 자랑질을 했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신혼시절이니 깨가 쏟아질만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회사일로 항상 바빴던 남편과 온전히 나 홀로 육아를 감당해야했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박 터지 듯 싸우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 무렵 남편 자랑을 자주하던 언니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내 생일에 회식에 불려갔다가 만취상태로 골아떨어진 남편이 있는가하면, 손수 장을 봐와서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주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박복한 내 인생을 한탄하기도 했었다. 어느새 그 언니의 자랑과 나의 상상력이 결합한 '무결점의 남편'을 현실 속의 내 남편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편과의 사이는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내 남편과 다른 남편을 비교하던 악덕을 끊게 된 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언니의 남편 덕이었다. 알고 보니 그 언니 남편은 바람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 언니와의 인연은 나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었다.
첫 번째, 타인의 행복을 너무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특히 SNS에 올라오는 행복은 그 사람 삶의 '한 조각'에 불과할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만 간직하고 싶겠지만, 어찌 삶이 아름답기만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사람마다 눈코입이 모두 다르듯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장단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대 '사람'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특히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세 번째,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행복을 자랑하는 일은 배려 없는 행동이다. 돈 때문에 생활고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돈 자랑을 하고, 투병 생활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건강함을 자랑하는 것처럼,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남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눈치 없고 배려 없는 행동이다. 불행에 처한 당사자는 자신의 상황을 상대적으로 더욱 비관적으로 느끼게 된다. 물론 '나는 이렇게 불행한 처지이지만 당신만이라도 행복하니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입니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내가 SNS에 '있는 체'를 그만둔 계기도 '세 번째 교훈'에 의해서이다. 아름다운 추억은 '나만보기' 설정으로도 충분히 간직할 수 있다.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누군가의 불행을 증폭시키는 건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체'하던 습관은 많이 고쳐졌는데, '없는 체'하던 습관은 앞으로 고쳐 나가야겠다. 나는 나름의 배려와 겸손의 표현으로 '없는 체'했던 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지지리 궁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서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잘 꾸려가는 일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를 타고 균형을 잡아야하는 파도타기와 같다. 진솔하게 다가가는 게 정답이겠지만, 이론을 실전에 적용하는 일이 나에겐 너무 어렵다. '있는 체'와 '없는 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는 파도타기 초보 중의 왕 초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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