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3월, 그리고 불안
프리츠 리만, 《불안의 심리》
2018. 03. 29.
"불안은 우리의 발전에서 특별히 중요한 지점들에서 제일 먼저 의식 속으로 온다."
-프리츠 리만-
두 달 동안 심리학책과 양육서만 읽어댔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와 이로써 학부모가 된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나이로 따지자면 7살이나 8살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유아기와 학령기라는 구분으로 보자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기 전과 후의 차이처럼 아이는 이제 막 의무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알게 될수록,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늘어날수록, 행동반경이 넓어질수록, 자유와 의무는 비례관계이고 자유의 뒷면은 책임이라는 사실을 아이는 깨달아 갈 것이리라.
엄마품의 낙원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뗀 아이를 바라보며 때론 불안한 시선으로, 때론 대견한 시선을 보내며 3월 한 달을 보낸 거 같다.
읽은 심리학 서적 중에 프리츠 리만의 《불안의 심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태어난 세계인 지구가 크게 자전, 공전, 원심력, 중력이라는 네 가지 힘에 의해 존재하듯이 인간의 심리를 이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이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자전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요구, 공전은 '관계속의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요구, 원심력은 '변화와 변전'에 대한 요구, 중력은 '지속과 불변'에 대한 요구에 비유할 수 있다. 개인과 공동체, 변화와 지속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인 동시에 이율배반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불안은 그림자처럼 늘 우리의 삶을 따라붙는다. 이 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신경증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방향잡기를 위해 떨리는 나침반처럼 불안은 균형잡기를 위한 존재의 떨림이기도 하다. 불안을 '자유의 어지러움'이라 했던 키에르케고르나 '가장 확실한 가능성인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했던 하이데거의 실존적 해석에 이어 프리츠 리만 식의 또 다른 해석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학부형이 된 한 달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생각보다 훨씬 변화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하고 홀로 50만원을 들고 상경해서 고시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내가 말이다.
남편의 울타리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며 오랜 시간 안주한 탓일까? 머리로는 새로움과 도전을 긍정하고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지속적인 것을 더 선호하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게 강한 사람인 것을 들킨 기분이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움직이니 불안하고 우왕좌왕 할 수밖에.......
아직 한글도 못 떼고, 마냥 애기 같은 녀석을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버겁고 두려웠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자전, 공전, 원심력, 중력, 그리고 아이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변화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은데, 작은 변화에도 지진이 일어나는 겁쟁이 엄마가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조바심 내지 않고 아이의 걸음에 맞춰 손을 잡고 걸어 갈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