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풀같은 마음으로, 봄볕같은 어머니 사랑 보답하기 어렵네
봄나들이 철에 가장 호황을 누리는 공장 중 하나는?
바로 단무지 공장이다. 소풍의 백미는 김밥이요, 약방의 감초처럼 어떤 종류의 김밥에도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단무지 아닌가?! 게다가 라면이든, 짜장면이든, 우동이든, 단무지를 곁들이면 달콤 새콤 짭조름한 맛은 별미가 되어 침샘을 자극한다. 어린 시절 소풍가는 날 새벽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 보다 일찍 일어나 어머니가 금방 말아주신 김밥을 날름 집어먹던 즐거움, 초중고 졸업식 날 모처럼 만의 외식으로 짜장면을 먹던 추억 속 어딘가에 단무지는 영화의 엑스트라처럼 눈에 띄지 않게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단무지는 일본식 김치의 한 종류인 타쿠앙쓰케(澤庵漬)를 한국식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0~1867년) 초기에 ‘타쿠앙’이라는 승려가 처음 만들었고 그의 이름에서 연유한 타쿠앙쓰케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다쿠앙’, ‘다꾸앙’, ‘다꽝’이라 불리다가, ‘맛이 달달한 무’라는 뜻의 ‘단무’와 절인다는 뜻의 한자 ‘지(漬)’가 합하여 오늘날의 표준어인 ‘단무지’가 된 것이라고 한다.
먹거리에 지나지 않던 단무지에 의미가 생기게 된 건, 시어머님이 단무지 공장에 다니시면서 부터이다. 환갑을 바라보시는 나이에 자식에게 부담 줄까봐, 그리고 손주 선물 사주는 재미로, 하루 종일 무를 다듬어야 하는 고된 일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런 할머니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덟 살 된 아들은 할머니가 장난감 사주기로 한 어린이날만을 두 달 전 부터 눈 빠지게 기다려왔다.
5월5일 그 날도 어머님은 단무지 공장에 출근하셨다.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작업복만 갈아입고 공장 근처에서 아들 내외를 기다리시던 어머님의 표정은 가로수의 나무보다 푸르렀다. 어머님이 차에 타시자 작업복이 들어있던 묵직한 가방에선 알싸한 단무지 냄새가 났다. 어머님의 고되셨을 하루와 자식과 손주를 향한 사랑이 아련한 내음으로 전해져 왔다. 죄송함과 감사함에 목이 메었다.
“한 치 풀 같은 마음으로
봄볕 같은 어머니 사랑 보답하기 어렵네.“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맹교(孟郊)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머님의 단무지 냄새 배인 가방 안에는 커다란 달이 들어있을 거 같다. 잠이 오지 않는 캄캄한 밤, 어머님의 가방이 내 가슴 한 켠을 은은한 빛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