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트라우마 이후의 작은 선택들

나는 왜 나를 벌하고 있었을까

by 느리게걷는여자

1. 다시 흔들리는 순간에 대하여

트라우마는 다 끝난 일이라 외면해도, 몸이 먼저 기억해버리는 마음의 상흔이다. 그것은 종종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다. 영화 〈와일드Wild〉는 그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이 영화는 회복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다시 흔들리는 순간들을, 판단 없이 오래 바라본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이미 충분히 무너진 사람이다. 가정폭력의 기억, 사랑하던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자기 파괴의 시간들. 그녀를 짓누른 감정은 슬픔보다 무력감에 가까웠고, 그 무력감은 곧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감각, 결국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이라는 생각. 수치심은 이렇게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2.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메고

길 위에 오른 셰릴이 처음 마주하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몸보다 큰 배낭이다. ‘Monster’라는 이름이 붙은 배낭은 자꾸 그녀를 뒤로 잡아당기고,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짐이기보다 삶에 가깝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종종 이런 느낌이다. 내려놓고 싶지만 내려놓을 수 없고, 벗어나고 싶지만 함께 살아야 하는 무게.


길 위의 셰릴은 자주 넘어진다. 신발은 발에 맞지 않고,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한 장면에서는 벗겨진 등산화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다시 돌아가 주울 수 없는 물건. 그 장면은 말한다. 이 길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 없다고. 그럼에도 셰릴은 멈추지 않는다. 이 반복은 의지라기보다 몸의 선택에 가깝다. 한 발을 내딛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걷는 동안 배운다.


3. 트라우마는 몸의 반응이 앞선다

영화 중반, 셰릴은 숲속에서 위험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명확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충분히 위협적이다. 성적 뉘앙스, 경계를 침범하는 질문, 대상화하는 시선. 셰릴의 몸은 즉각 반응한다. 굳어버리고, 숨이 가빠지고, 생각은 멀어진다. 트라우마는 이렇게 기억보다 먼저 몸으로 돌아온다.


트라우마 이후의 무력감은 종종, 이미 도망칠 수 있음에도 도망치지 못하는 상태로 나타난다. 몸은 여전히 위험을 현재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셰릴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두렵다. 다만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한다. 이 경험을 이유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술로 돌아가지도,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떠나 다시 걷는다.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선택이지만, 바로 이 차이가 삶의 방향을 바꾼다.


4.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로제 폴 드루아는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에서 걷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다시 균형을 회복하며 거듭하는 것. 걷는다는 것은 추락을 시작했다가 만회하고, 균형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는 반복이다. 그는 라틴어 Gradus와 Gradere에서 ‘진보(pro-gresus)’가 한 발을 내딛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물리적 세계에서나 정신적 세계에서나 마찬가지라고.


셰릴의 걷기는 이 정의와 닮아 있다. 그녀는 한 번도 완전히 안정된 상태로 걷지 않는다. 늘 흔들리고, 자주 멈춘다. 그러나 다시 발을 옮긴다. 셰릴의 걷기는 그래서 극복이 아니라, 이 불안정한 균형을 받아들이는 연습처럼 보인다.


5.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장면들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상황과 비슷한 순간이 재현되었을 때, 몸이 먼저 얼어붙던 경험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도 거창한 대처가 아니었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아주 작은 선택이었다. 더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기, 그 자리에 오래 빠져들지 않기,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6. 회복의 얼굴

〈와일드〉는 말한다. 회복이란 상처가 사라지는 일도, 두려움이 없어지는 순간도 아니라고. 다만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상태라고. 넘어질 수 있는 삶을 살되, 다시 걷는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변화란 단단해지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한 발을 내딛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선택이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꾸기도 한다.


트라우마가 다시 우리를 붙잡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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