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연차 좀 사용하겠습니다"
"팀장님, 저 이번주 금요일에 일이 있어서 연차 사용하겠습니다."
직장 다녔을 때는 연차 사용하려면 2~3일 전에 미리 상사에게 알리고, 결재를 받았습니다. 직장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를 쉬어도 일에 무리가 없도록 준비를 해야 했죠.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미리 쉬는 날의 업무까지 해 놓고 갔습니다. 하루는 괜찮은데 여행을 가기 위해 2~3일 정도 연차를 연속해서 사용할 때는 조금 힘이 들죠. 일을 거의 2배로 해야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까 조삼모사 아닌가요?)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따로 연차가 없습니다. 하나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정해진 연차 개수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단점이라고 한다면 직장에서 연차는 돈을 받으면서 쉬는 거지만 프리랜서의 연차는 돈 없이 쉰다는 것이겠죠. 돈 벌고 싶으면 더 일하고, 안 벌고 싶으면 쉬어라.
평소에 일 욕심이 많아서 시간이 남으면 무조건 뭐 하나라도 더 해보려고 찾는 스타일입니다. 직장 다닐 때도 그랬고, 프리랜서로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도 평소대로 매일 여러 업무를 하려 했는데, 감기가 살짝 오는지 몸이 축 늘어지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눈만 깜빡이며 콘텐츠를 보고 싶어지는 겁니다. (몸이 말을 안 들어!)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 매일 정해진 시간대의 라디오는 하되, 조금 여유를 두고 해도 되는 일은 미뤄뒀습니다. 몸이 피로해서 체한 일도 있었으니, 몸이 신호를 보낼 때는 그대로 쉬어줘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주말이 아닌 평일에 마냥 편하게 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요새 빠진 예능을 보면서도 고개를 돌려 현재 시간을 몇 시인지, 조금이라도 몸이 괜찮아지면 다시 일할 수는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오늘 할 일을 안 하고 미뤄두면~내일은 뭘 해야 하고, 뭘 해야 하고...' 정리를 했죠. 마음 같아서는 쉰만큼 에너지가 충전되어 계획대로 일하고 싶은데 몸이 잘 안 움직이더라고요. 자꾸만 잠도 쏟아지고, 몸을 일으킬 힘도 안 나고요. 몸이 푹 쉬라는 신호를 자꾸만 보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연차를 써야겠다.
줄리님,
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반차를 쓰려고 했는데
연차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줄리님. 쉬세요-하고 제가 사인을 했습니다. (오늘 하려고 했던 일 목록 중에 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줄리 팀장이 그것은 내일 해도 된다고 말해서 푹 쉬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하루를 쉬려고 했을 때, 문득 왜 직장 다닐 때보다 체력이 더 약해졌나 싶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퇴근 후에 다른 일도 할 정도로 체력이 있었거든요. 곰곰이 고민을 해보니 그때와 하나 다른 게 있더라고요. 바로 건강 약 챙겨 먹기. 그때도 체력이 약하긴 했지만 어떻게서든 일하려고 아침마다 간 건강 약을 습관처럼 챙겨 먹었습니다. 그걸 먹으니 저녁이 되어도 피곤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었거든요.
퇴사하고도 간 건강 약을 챙겨 먹긴 했는데, 직장 다닐 때보다 일할 것이 적다고 생각해서 안 챙겨 먹은 지 꽤 됐습니다. 프리랜서로 연차를 낸 그날, 골골대며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여는데 주방에 있는 간 건강 약이 보였습니다. 그래, 이걸 안 챙겨 먹으니 내가 체력이 없어졌지, 하며 약을 챙겨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홍삼도 같이 매일 먹기도 했습니다. (건강은 스스로 챙기자)
하루를 푹 쉬고 나니 다음날 몸이 가뿐해졌습니다. 역시 자신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어떻게 해야 컨디션이 나아지는 지도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오래 달리기 위해 중간에 한 번쯤은 쉬어줘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도록 매일 조금의 힐링 시간을 가지는 것도요.
열심히 일해서 한번에 피로감이 오는 지인들에게 힘을 내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막 마라톤 이야기. 마라톤 중에 가장 힘든 코스라는 사막에서 달리는 마라톤은 마라토너중에서도 경험이 많은 사람들만 참가한다고 합니다. 7일 동안 사막을 달려야 하는 코스인데, 지독한 더위로 체력 조절을 잘하지 못해 마라톤에 참가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보통은 사막 마라톤하다가 갈증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는 물이 없어서 죽었을까, 의문이 들잖아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물이 있었다고 해요. 중요한 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뒤늦게 알아차려서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갈증이 났을 때 물을 마시면 갈증 해소가 바로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는 마라토너들은 중간에 목이 마르지 않아도 물을 계속 마셔준다고 해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의 일상과도 같죠. 몸이 피곤해도 계속 일한다면 나중에 몸이 이상한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때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잠시 쉬어준다고 해도 몸은 이전처럼 돌아오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몸이 힘들지 않아도 중간 쉬어주는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쉰다고 해서 일을 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잠시 쉬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고, 쉬고 나서 더 뛸 수 있는 체력이 생기기도 하고요. 오히려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쉬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일하면서 지치거나 피곤할 때는 어떻게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달래주나요? 나만의 달래는 방법 한 3가지 정도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를 잃지 말고 꾸준히 일과 밸런스를 맞추며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연차를 쓰고, 참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게 반차를 쓸 때도 있는 것 같은데. 뭐, 제가 결재하니까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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