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은 중3 혜경이다.
"안녕 어서 와~" 눈으로 힐끗 인사를 나누고 난 여전히 작업하던 노트북에 집중한다.
"원장님 저 책 샀어요" 혜경이의 웃음 가득한 목소리다.
"그래 서점 다녀왔구나" 의례적인 인사로 대답한다. 눈은 여전히 노트북에 붙박이다.
"네~ 맘에 들어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샀어요" 난 여전히 시선을 딴 데 두고 귀로만 이야기한다.
"칸트의 형이상학이요" 혜경이가 사무실 소파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난 노트북에서 시선을 뗀다. 혜경일 바라본다. 아주 맑고 밝은 미소로 가득하다. 두꺼운 책 한 권을 가슴에 안고 손으로 쓰다듬으며 뿌듯해하고 있다.
"칸트라고?" 난 다시 물어본다.
"네 칸트요."
뭔가 가슴에 고구마 100개 먹은 답답함이 밀려온다. 스치는 건 나의 첫 번째 대학 전공이 철학이 아니었던가. 순간적으로 84학번이었던 그 당시가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그리고 참말로 미운 말을 해버렸다.
"혜경아, 그 책 이해할 수 있겠나? 책 좀 보자. 청소년을 위한 칸트 책이야?"
일단은 책을 살펴보기로 한다.
책을 받아 들고 난 눈이 땡글해질 수밖에 없다. 교재다. 대학 때 전공서적으로 보던 교재 같은 책이다.
난 그 자리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이 책은 대학생들이 읽을만한 책인데, 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그 이전 철학자들, 특히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기초 이해가 꼭 필요한데 한 번씩 읽어봤어? 들어봤어?" 나의 대답이다. 참 얄밉게 말하는 나를 본다.
"아니요. 왜 그런 사람들 책 안 보면 칸트 못 읽어요?"
"아니, 읽을 수는 있지만 사전 지식이란 게 있어야 이해가 될걸. 이 책은 완전히 대학생들 전공서적이라서 말이야. 청소년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먼저 읽는 게 어때?"
"어려워요? 글자만 봐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아~ 이 순순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나.
혜경아, 칸트는 기존의 형이상학의 비판에서 출발해. 그래서 칸트 하면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이라는 책이 유명하거든. 실은 나도 대학 때 전공하면서 어려웠던 기억이 나거든… 잠깐만~
말을 하면서 내가 중3짜리 학생에게 맞는 대화를 하나? 이게 뭐지? 순간 멈칫한다.
그래, 잠시 숨 고르기 하고 대화를 이어가야겠다.
"혜경아 나 물 한 잔 할게?"
초롱초롱한 혜경이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쳐다본다.
고대 철학자를 다 얘기해 줘도 되나? 나도 다 까먹었는데, 그저 흐릿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인데…
그래도 나름 전공이고 논문을 썼던 기억까지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 말이야.
그래도 뭔가 알려주고 싶다.
자 혜경아, 들어봐.
너 삼각형 하면 뭐가 떠오르니?
너의 삼각형과 나의 삼각형이 같은 모양일까?
직각삼각형을 떠올릴 수도 있고, 정삼각형을 떠올릴 수도 있고, 피라미드를 떠올릴 수도 있고, 역삼각형을 떠올릴 수도 있어.
어떤 개념이나 물건을 이야기할 때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아.
두 사람이 같은 걸 떠올린다 해도, 개인은 각각의 경험과 인생 스토리를 엮어 물건이나 사물, 단어에 대한 의미가 다르지.
그렇다면 철학을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는 비슷하거나 같은 이해도로 설명을 이어가는 게 맞지?
그렇다면 칸트의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형이상학에 대해 네가 떠오르는 단어나 용어를 말해봐. 나랑 이념이나 생각이 같은지 맞춰보자.
기본적으로 일단 알고 들어가야 할 기초지식이 있어야 이해되는 게 있어.
오늘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가 첫날 와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치겠다고 하면 무리지.
지금 네가 라흐마니노프를 치겠다고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
책을 읽을 수는 있어.
이해는? 힘들 것 같은데 좀 쉬운 칸트로 시작해 보는 게 어때?
혼자 열심히 이해를 돕고 싶었다.
우리 혜경이
"그럼 제가 조금씩 읽을 테니 원장님이 설명해 주세요."
헐~ 이게 무슨 소리야.
"제 주변엔 원장님밖에 없어요. 이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어라~ 나 음악학원 원장인데, 1984년에 배운 철학을 꺼내서 중3 친구에게 설명을 해야 하나?
혜경아, 무리야. 나 다 까먹었어.
아주 해맑은 우리 혜경이 "원장님은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잖아요."
오메나~ 아니~ 나도 다 모르는데.... 졸지에 중3 철학 선생이 되겠다.
이 아이에게 내가 어떻게 비친 걸까?
"원장님은 다 하시잖아요. 피아노도, 그림도, 책도… 너무 신기해요."
혜경아~ 그러지 마~ 나의 얕은 지식을 그렇게 말하지 마.
며칠 전, 책에 줄을 그어서 나한테 질문할 거라며 들고 왔다.
중3 혜경이랑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눈다.
아~ 나 음악학원 원장인데…
학원에서는 피아노만 레슨 하면 안 되나?
어린 맘에 칸트를 들고 시나 있는 아이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같이 공부해야 하나?
졸업한 지 40년이 지났는데 다시 철학 공부하게 생겼다.
아~ 칸트!!!
이노무 지지배 땜시… 나 다시 공부해야 한다. 이뿐 것 같으니라고~
조만간 좀 쉬운 청소년 철학책으로 청소년 칸트를 찾아봐야겠다. ㅎㅎㅎ
이참에 청소년 철학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볼까나? 오래전 전공을 꺼내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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