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어요
2016년
내가 있는 곳은 안성시에서도 중앙이 아닌 시골이 가깝다. 분당서 학원을 접고 안성으로 이전하고는 참 시골스러움을 맛보았다. 옥수수를 삶아 오시는 할머니, 고구마를 가져다주시는 어머니. 김치를 보내주시기도 하는 학부모님도 계셨다. 분당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따스함이었고 낯섦이었다.
고등학생이된 수연이와 은정이가 입시 반으로 성장하고,입시 레슨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고 학원을 와서 11시까지 연습을 하고 가는 것이었다. 집에 갔다 오면 오가는 시간이 낭비가 심했다. 수연랑 은정이에게 시간은 금과 같은 고3 입시였다. 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들은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마음먹고 연습을 해 오던 터였다.
내가 뒷바라지한다는 마음으로 학원에서 저녁을 하기로 했다. 매일 저녁 새 밥을 하고 아이들이랑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반찬은 한두 가지가 전부였다. 수연 어머님은 수시로 미안하다면서 김치를 보내 주셨고 때론 반찬도 보내 주셨다. 수연이와 은정이 그리고 나는 저녁밥 동지가 되었고 피아노 레슨을 했다. 처음이었다. 학원에서 밥을 해먹이면서 아이들을 레슨 하다니!
아이들에게 밥을 해먹이며 1년을 지내는 동안 우리 학원 선생님들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래 봐야 재들 크면 원장님 공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 난 좀 달랐다. 어려운 형편에 피아노로 진로를 정하고 달려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굶길 수는 없었다. 좀 수고하지, 뭐~ 그러면서 시작한 저녁이었다. 나도 같이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많았고 번거로웠다.
우리 집 아들과 남편을 팽개치고 난 또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우리 집은 미리 내가 준비를 해 두고 나오면 되었고 아들도 이미 대학생이 된 터라 내 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아이에게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난 당시 수연와 은정이의 엄마였다. 때론 지치고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아니면 아이들이 굶는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밥하기 싫을 땐 김밥 집에서 시켜 먹기도 하면서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아이들이 고3 입시를 마치는 날까지 저녁밥을 해 먹으며 레슨을 했다.
그해 수연랑 합격자 발표 시간만 기다렸다. 초조하다. 시간은 다가오고 눈은 컴퓨터에 붙어 있었다. 수험번호와 생년월일을 넣는다. 떨리는 손에 땀이 고인다.
클릭!
“원장님! 저 합격이에요!” 수연는 의자에서 반사적으로 펄떡 일어난다. 울먹이는 수연의 목소리에 나도 따라 목이 메어 운다.
“축하한다. 너무 축하한다 잘했다” “전화기 주라 얼른 전화하자” 서둘러 전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수연 합격이에요. 서원대(옛 청주사대를 계명) 음악교육학과에 합격했어요” 수연 엄마는 잠시 말이 없다. 흐느낀다. 나도 흐느낀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어요.” “뒷바라지하시느라 엄마도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수연이는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합격했고, 은정이도 집에서 가까운 호서대학 피아노전공으로 합격했다. 우린 다 같이 울면서 합격을 축하하고 신나서 방방 뛰었다. 학부모님들도 함께 울었다.
아이들은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둘에게 학원벽 페인트칠하자고 제안을 했다. 페인트 색 선택은 수연가 했다. 우린 옷을 버려가면서 학원 내부 페인트를 칠했다. 깔깔거리며 신나게 톰소여의 모험에서 아이들이 페인트칠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칠했다.
대학 합격한 후라 뭘 해도 부담도 없었다. 아이들이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한다기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같이했다. 돌이켜보니 추억이다. 지금 두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연는 임용고시 준비 중이고 은정이는 음악 학원 강사로 근무한다. 추억여행을 하듯 그때를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그런 시절도 보냈구나! 참 잘했다 싶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2002년 겨울
어젯밤 몰래 다녀간 산타가 계셨나?
학원 입구에 김장김치가 한박스 도착해 있다
수연이의 전화다
김장김치 두고 간다고~
어머낫!!!
그때를 잊지않고 김장김치를 보내주신 수연 엄마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
수연인 사대 졸업 후 임용을 준비중이고 은정인 피아노 학원강사가 되었다
지난 시간이 휘리릭~ 흘러간다
감동에 눈물이 주르륵~
나 잘 살아온거 맞나요?
어젯밤.오늘 내내 눈속에 눈물이 자꾸 고인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거겠지
감사하다.
아주 많이~^^~
---- 방금 수연이 엄마랑 통화를 했다. 작년에 김장김치를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매해 못챙겨줘서 미안하다고~ 오메~ 이런~ 나 마구 신나게 소리지르고 싶다.
나 이만하면 족하다.....감사합니다....으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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