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꽃으로 남은 돈봉투
사촌동생 준이가 50세가 넘었으니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1990년 즈음 내가 20대 일때다.
퇴근하고 집엘 오니 사촌 여동생인 준이가 우리 집에 와 있다
아버지께서 일부러 준이를 불었다고 전해 들었다.
가까이 살면서도 자주 보지 못한 우리였다.
당시 이모네 큰딸 준이는 여고 3년생이었다.
이모부의 사업 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그런지 준이의 얼굴도 어두워 보였다.
엄마의 맛난 음식이 준이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을 한결 푸근하고 배부르게 해주셨다.
식사 후 아버지는 준이를 방으로 불렀고 우린 모두 방에 따라 들어가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진 준이에게 별말씀 없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냥 봐도 돈 봉투였다.
우리 집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용돈을 주시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날의 일들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몇 년이 흘렀을까?
그날도 저녁이었다.
준이는 이쁜 아가씨가 되었고 한 보따리 과일 선물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환한 미소에 꽃무늬 원피스가 한결 멋쟁이였다.
엄만 조카가 왔다고 기분이 좋아 맛난 밥상으로 준이를 맞이했다.
식사 후 몇 년 전 그날처럼 우린 안방에 옹기종기 모였다.
준이는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돈 봉투다
몇 해 전 그날처럼....
이번엔 준이가 아버지께 드리는 봉투였다
뭐지?
준이가 쑥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이모부 감사합니다. 그때 이모부께서 100만 원을 주셔서 무사히 학비를 내고 대학엘 다닐 수 있었어요.
나머지 학비는 장학금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모두 깜짝 놀랐다.
아버진 준이를 바라보며 봉투를 다시 내밀었다.
"준아! 이모부가 이거 받을라꼬 준거 아인기라...내가 젊었을때 대학엘 합격하고도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했던 시절이 생각나서 닐로 준기라. 공부는 해야하는기라. 넣어둬라"
우린 다시 눈이 동그래졌다.
준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목메인 소리다 들렸다
" 엄마, 아빠의 부도로 대학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모부 덕분에 희망을 가지고 공부했답니다. 그리고 이제 교사가 되어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다시 봉투는 아버지 쪽으로 밀려졌다.
"준아! 니가 잘해서 지금이 있는기라. 수고했다. 이젠 내가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거라. 장하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다.
지켜보던 동생과 나도 엄마도 우린 모두 코끝이 찡해진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
"준아! 살다가 어려운 사람을 만나거든 그 사람에게 베풀며 살 거라. 내한테 갚을 필요 없는기라"
준이도 나도 엄마도 우린 모두 소리 없는 울음을 삼켰다.
눈물 나는 행복과 감사의 장면은 사는 내내 나의 가슴속에서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있다.
이제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데 늘 살아계신다.
내 삶의 하나의 각인으로 어느 순간 연관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불쑥 등장하는 파노라마가 되었다.
그렇게 아버진 가셨지만 남아 계신다
준이는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교사로 충실히 자기 삶을 살아간다
아버지의 그날의 흔적으로 나 또한 우리 학원 어려운 아이들 교육비는 알아서 패스하고 교재비 면제까지 그리고 유니세프와 월드비전 같은 기부를 하며 아버지 그림자 훙내라도 내어본다.
아버지가 남겨둔 커다란 선물의 하루가 유난히 떠오른다
오늘은 오랜만에 준이에게 전화를 돌려야겠다
보고싶다.
준이가
그리고 그날의 아버지가....몹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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