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의 위시리스트
매장 출입문에 A4 한 장을 붙이고 아무도 없는 순간을 틈타 화장실로 달려간다. 다시 매장에 돌아왔지만 기다리는 고객은 없었고, 다시 나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그것도 잠시 고객이 몰리는 시간이 다가오자 불안해진다. 여기저기서 '저기요! 저기요!' 나를 찾겠지. 고객이 없어도 답답하고 고객이 많아도 불편하다. 어떤 게 더 나은 상황인지 모르겠다. 월급과 바꾼 오늘 나의 하루,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나 힘이 있고 그것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말했다. 코나투스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갖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코나투스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와 노력을 욕망이라고 부른다. 바로 성장욕구다. 내 안이 채워지고 충만감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코나투스다.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메디치미디어, 2018)
당시 우리 회사는 코로나로 인한 회사의 경영악화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 사업의 방향을 잃고 고객에게 외면당하는 중이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업구조로는 경쟁 시장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게 내부 분석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비전 없는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표정과 몸짓은 비슷하다. 하나같이 의욕 없고 나의 의지를 다잡아 무엇하리 체념하며 오늘 하루를 버틸 뿐이다. 예전 같으면 개선을 위한 대안도 제안해봤겠지만 나의 근무 환경이 점점 더 열악해지다 보니 그럴 여유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고 이 일을 통해 5년 뒤 나의 모습이 어떨까 상상했다. 회사가 번듯해도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해지고 일부는 무인 계산기,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될 것들이다. 지금의 정체된 모습이 앞으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이 곳에서 나를 방치하지 말자.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조금 느리더라도 잠시 쉬자. 퇴사하고 나서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적어보니 왠지 설렌다. 이직 준비생의 자세라면 자격증, 자기소개서 작성, 영어 공부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나의 위시리스트는 글쓰기였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단어들을 적어가며 나를 알고 싶었다. 내가 관심 있는 글 소재를 찾고 사고를 확장하니 나의 가치관이 드러나고 세계관이 보인다. 나에게 더 나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