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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Jun 25. 2020

카톡으로 일하는 꼰대 문화

1년 차, 카톡 때문에 퇴사하고 싶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 우리 매장에 클레임이 걸렸는데 그 직원이 너인 거 같아. 발령받은 지 얼마 안돼서 매장을 잘 모르는 직원이었다는데 일한 지 얼마 안 된 건 너밖에 없잖아.


   입사한 지 3주 차, 휴일에 회사로부터 그런 전화가 올 줄 몰랐다. 내일 출근하는데 굳이 오늘 당장 사실 확인을 하고 말겠다는 화난 목소리의 상사의 통화였다.


  그런 실수는 신입인 너밖에 할 사람 없을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추측과 심기 불편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다음날 출근해서 보니 고객이 매장 이름을 헷갈린 탓에 잘못된 클레임으로 확인되어 억울한 누명은 벗을 수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날부터 알았다. 앞으로 이 긴장 속에서 계속 살아야 된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회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나 카톡만 보면 온몸이 차가워지고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으면서 식은땀이 났다.


  1년 내내 영업 중인 유통업은 직원들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한 달 휴무일 개수대로 직원 간 휴일을 조정하는 스케줄 근무로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쉬는 날이어도 누군가는 일하고 있으니 업무 인수인계가 안되거나 업무 히스토리를 모르는 경우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91년생 밀레니얼인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던 2014년 라떼는 말이지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유통 영업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조직원들에게 인정받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들의 패밀리 정신에 동의해야 했다. 누가 더 일찍 출근하나 동기와 경쟁했고 퇴근을 모른 채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미덕이라 하루에 15시간 근무는 기본이었다.


  당시 나의 최저 몸무게를 찍은 기쁨과 체력이 깎여나가는 고통을 함께했다.


  일할 때도 강행 노동을 하는 탓에 쉬는 날 연락 오거나 카톡에 계속 울려대는 업무 이야기는 크게 거슬릴 일도 아니었다. 나는 가끔은 잡담이 이어지기도 하고 업무 확인도 하는 그들만의 카톡 리그에 익숙해졌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쉬는 날 출근하는 것은 한 번쯤 해야 하는 당연한 태도였고 일 잘하는 막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상황도 즐길 줄 알아야 했다.


  상사가 나를 인정하고 일을 맡기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사무실을 뛰쳐나가 건물 기둥 뒤편에서 눈물을 훔치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기뻤다. 일도 익숙해지고 자신감도 생겨 웬만한 카톡에 쫄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업무를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다.


  근무지가 4번째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상사가 바뀌고 함께 일하는 조직원도 바뀌면서 나의 업무 위치도 최고 상사 밑에서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올랐다.


  유독 이번 상사는 업무지시 체크 방식을 모두 카톡으로 했다. 나의 지난 업무 행적을 카톡으로 사진, 메시지로 기록해서 단체 카톡방에 올렸고 피드백으로 둔갑한 저격 멘트는 내가 쉬는 날이면 절정에 이르렀다. 내 밑에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이거야말로 직장 내 카톡 괴롭힘이라 생각했다.


   쉬는 날 누워있다가 늦잠 자다 일어나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도 내가 쉬는 날이면 꼭 한 번씩은 회사에서 카톡이 왔다. 부재중 통화라도 온 날이면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온갖 상상을 했다.

  

나와 팀장과의 나이 차이는 2살 차이. 그만큼 전 직원 연령대가 낮고 같은 밀레니얼 세대임에도 꼰대는 조직에서 필연적인 존재였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이 카톡을 견뎌내는 게 내 일인가 싶었다. 실수에 대한 트라우마보다도 쉬는 날 카톡을 견뎌내는 게 더 힘들었다. 업태 구조상 모두 쉬는 날이 없다는 게 이 소통의 원인인데 이걸 바꿀 수 없으니 싫으면 내가 나가야 했다.


  그마저도 정작 퇴사하겠다는 말은 무서워서 꺼내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의 발령으로 상사와 팀원들이 또 바뀌었다. 회사에서는 불필요한 카톡은 자제하자는 포스터도 문에 붙이라는 공지가 내려올 정도로 나만의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며 버텼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에도 직장 문화는 바뀌지는 않았다.  

  밀레니얼들은 일과 관련된 중요한 확인은 어쩔 수 없지만 습관성 업무 연락을 일삼는 꼰대들에 대한 지적을 시작했다. 나도 연락에 대한 불쾌함, 불편함을 너무 잘 아는 밀레니얼이자 조직원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적극 동참했다.


  내가 근무하는 날에 쉬는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쉬는 날은 없었다. 오히려 책임자가 된 상황에서 직원들이 모르는 업무, 결정사항에 대해 물어보려니 직원들이 나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쉬는 날 상사 혹은 팀원들에게 카톡과 전화를 받고 있었다. 워라밸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누군가는 항상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 조직세계다. 내가 편하다면 누군가는 남모르게 발버둥 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일과 삶의 ONOFF 경계를 찾지 못한 채 허덕이는 91년생 밀레니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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