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예약 룸이 마음에 드셨는지 플래카드 앞에 서서 단독샷 사진을 24장이나 찍었다. 인생에 한 번 있는 환갑 파티니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 하시며 이리저리 구도를 바꾸어 사진 한 장씩 얼굴과 배경이 잘 나왔는지 체크하셨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의 소감이 이어졌다. 엄마에게 고마움의 말씀과 그다음 내 차례가 되었다.
“요즘 퇴사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직 아빠도 일하고 있으니 정 힘들면 이제 그만두고 잠깐 쉬어라. 뭐라 할 사람 없으니, 속 끓이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하길 바란다. ”
아버지는 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자격증으로 30년 넘게 직장생활 해온 것을 보면 모르겠냐며 전문직에 대해 항상 강조하셨다. 덧붙여 큰딸로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고 집안이 어려울 때는 네가 가장이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항상 하시던 말씀과 다르게 대학에 진학했고 취업했다.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고 취업준비 기간 없이 첫 직장을 얻어 남들보다 빠르게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7년 동안 꾸준히 다녔다. 하지만 내 직업이 전문직처럼 자격증이나 별도의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이고 스케줄 근무로 불규칙한 출퇴근을 반복하기에 아버지는 나의 직장을 항상 못마땅해하셨다. 하루빨리 비정상적인 직업 빨리 그만두고 간호조무사라도 준비하라고 갈등을 빚은 적도 많았다.
내가 원하는 길을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었지만, 무작정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적성에 맞지도 않는 자격증을 딸 수는 없었다. 내 직업에 최선을 다했고 나름 직장 안에서 인정받고 기회를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집안에 보탬이 될 때도 있었고 취업준비 기간, 유학 혹은 휴학 없이 지금 나의 일을 찾았으니 내 책임을 다했다고 안심했다. 그렇게 7년이 되고 나니 마음이 지쳐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온 맏딸들이 자기 나름의 길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부모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동일시하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는 길은 잃어버리기 쉽다. 모두의 행복에 대한 강한 책임감 때문에 자기가 맡은 역할에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 장래의 직업을 생각할 때도 남들이 먼저 떠오른다.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다. 기준을 높이 설정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상원, 갈매나무, 2018)
부모님이 지금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나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몰라 답답하다. 나는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살았고 가족들에게 손 벌리는 일 없이 나의 영역을 잘 지켰다. 하지만 나이 서른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은지도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 나의 실패는 가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맏이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지금의 내 모습이 괴롭다.
맏딸들은 이 책임감으로 많은 것을 이뤄낸다. 함께 일하기 좋은 유형이지만 한편으로 맏딸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모든 사람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에서 때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상원, 갈매나무, 2018)
맏딸들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은 가족 안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드러난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람 잘 챙긴다, 리더십 있다는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자신만의 역할을 만들고 수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학교생활, 직장생활, 취미 활동을 봤을 때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길 원했고 책임감이 따른다 해도 내가 주도적으로 행동하길 좋아했다.
지금까지 사람들 중심에 서있는 나를 보면서 쾌활한 외향성 기질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의 만남이 피곤해지고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에 시간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약속을 잡아도 내가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내고 눈치를 보며 말과 행동을 가려해야 하니 피곤했고 일할 때는 다른 사람이 놓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지쳤다. 이제서야 내향적인 원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퇴사하는 것도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녀로서 보이면 안 될 나약한 모습이라 생각하고 망설였다. 정말 ‘나’를 위해 살아온 것이 맞나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부여한 책임감은 내려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퇴사했다.
퇴사한지 2주가 지날 무렵 아버지는나에게 A4 3장을가득채운편지를쓰셨다.
“직장 생활하느라 고생 많았다. 그동안 힘들게 일한 만큼 마음 편히 쉬는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다른 걱정 없이 다음은 평범하고 편한 직장생활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 바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큰딸인 네가 우리 가족을 이끌어야 한다. 언니로서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고 정진하길 바라고 응원한다. 사랑한다. 큰딸.”
그렇다. 나는 큰딸이었다. 내가 나를 외면한다고 해도 태생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역할과 책임이 있다. 나란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보다 어른이 되니 직장만 다니면 남들에게 보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참고 계속 일할 수도 있었다. 내가 이 순간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맏이 자격 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첫째 딸일 뿐이다. 동생을 보살피고 부모님이 의지하는 자식이라는 내 역할을 알고 있지만 잠시 내려놓자 결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집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동생의 놀림에도 그저 허허 웃는다. 조금만 기다려라. 다시 나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나의삶은내것과가족의기대와바람이함께엉켜있고그것은앞으로도변하지않을것이다. 30년간첫째로서의책임감도컸지만가족서열속나의권위를누리고살았다. 지금 나는 모든 권위와 책임을내려놓고 ‘나’만바라보며일상을살고있다. 내가집중하고싶은것, 좋아하는취미만생각하며그어떤생각도하지않는다. 다만혼자만의시간을잘견디고성공하여나의자리를빨리다시되찾고싶은욕심과두려움은버리지못했다. 긴시간이걸리지않기를바라는마음에오늘도 나는 계획을세우고 성실하게수행한다. 나는맏딸이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