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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내일 Jun 27. 2020

나는 우리 집 큰딸입니다.

내가 실패하면 안 되는 태생적 이유

 



아버지 환갑잔치 때 집에서 놀고 있는 서른 살 백수인 큰딸이 될 수는 없다. 아버지는 일 그만두고 쉬고 있는 큰딸의 모습을 앞에 두고 온전히 생일을 즐기실 수 없을 테니 지금은 아니다. 퇴사는 잠시 아버지 환갑잔치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멋지게 만들 이벤트가 뭘까 생각했다.  우리 가족 응원 멘트와 사진을 넣은 축하 플래카드를 제작하자. 선물로 동생과 함께 각각 100 원을 용돈을 준비하고 파티용 풍선도 구매했다.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있는  근처  식당을 찾아 코스요리로 예약했다. 환갑 당일에는 1시간 전에  식당을 방문해 플래카드 벽에 붙이고 파티 풍선을 불어 배치해놓고 코스 식사 메뉴를 다시 확인했다.


아버지는 예약 룸이 마음에 드셨는지 플래카드 앞에 서서 단독샷 사진을 24장이나 찍었다. 인생에 한 번 있는 환갑 파티니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 하시며 이리저리 구도를 바꾸어 사진 한 장씩 얼굴과 배경이 잘 나왔는지 체크하셨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의 소감이 이어졌다. 엄마에게 고마움의 말씀과 그다음 내 차례가 되었다.


“요즘 퇴사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직 아빠도 일하고 있으니 정 힘들면 이제 그만두고 잠깐 쉬어라. 뭐라 할 사람 없으니, 속 끓이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하길 바란다. ”




아버지는 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자격증으로 30년 넘게 직장생활 해온 것을 보면 모르겠냐며 전문직에 대해 항상 강조하셨다. 덧붙여 큰딸로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고 집안이 어려울 때는 네가 가장이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항상 하시던 말씀과 다르게 대학에 진학했고 취업했다.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고 취업준비 기간 없이 첫 직장을 얻어 남들보다 빠르게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7년 동안 꾸준히 다녔다. 하지만 내 직업이 전문직처럼 자격증이나 별도의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이고 스케줄 근무로 불규칙한 출퇴근을 반복하기에 아버지는 나의 직장을 항상 못마땅해하셨다. 하루빨리 비정상적인 직업 빨리 그만두고 간호조무사라도 준비하라고 갈등을 빚은 적도 많았다.


내가 원하는 길을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었지만, 무작정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적성에 맞지도 않는 자격증을 딸 수는 없었다. 내 직업에 최선을 다했고 나름 직장 안에서 인정받고 기회를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집안에 보탬이 될 때도 있었고 취업준비 기간, 유학 혹은 휴학 없이 지금 나의 일을 찾았으니 내 책임을 다했다고 안심했다. 그렇게 7년이 되고 나니 마음이 지쳐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온 맏딸들이 자기 나름의 길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부모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동일시하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는 길은 잃어버리기 쉽다. 모두의 행복에 대한 강한 책임감 때문에 자기가 맡은 역할에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 장래의 직업을 생각할 때도 남들이 먼저 떠오른다.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다. 기준을 높이 설정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상원, 갈매나무, 2018)



아버지는 답답한 마음에 다른  찾아보라 뜯어말려도 기어코 직장을 다니더니 이젠  경력도 아까워서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한탄하셨다. 딱히   없으면 간호조무사 자격증이라도 공부하는  어떻냐 다시 말씀하신다. 부모님은 나의 경력, 커리어에 관한 본질적인 삶보다 현재 직장이 없는 상황과 앞으로 밥벌이를   있는지가 시급한 문제인  말씀하시니 내심 서운한 마음이다.


부모님이 지금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몰라 답답하다. 나는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살았고 가족들에게 손 벌리는 일 없이 나의 영역을 잘 지켰다. 하지만 나이 서른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은지도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 나의 실패는 가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맏이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지금의 내 모습이 괴롭다.



맏딸들은 이 책임감으로 많은 것을 이뤄낸다. 함께 일하기 좋은 유형이지만 한편으로 맏딸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모든 사람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에서 때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상원, 갈매나무, 2018)


맏딸들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은 가족 안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드러난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람 잘 챙긴다, 리더십 있다는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자신만의 역할을 만들고 수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학교생활, 직장생활, 취미 활동을 봤을 때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길 원했고 책임감이 따른다 해도 내가 주도적으로 행동하길 좋아했다.


지금까지 사람들 중심에 서있는 나를 보면서 쾌활한 외향성 기질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의 만남이 피곤해지고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에 시간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약속을 잡아도 내가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내고 눈치를 보며 말과 행동을 가려해야 하니 피곤했고 일할 때는 다른 사람이 놓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지쳤다. 이제서야 내향적인 원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퇴사하는 것도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녀로서 보이면 안 될 나약한 모습이라 생각하고 망설였다. 정말 ‘나’를 위해 살아온 것이 맞나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부여한 책임감은 내려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퇴사했다.


퇴사한지 2주가 지날 무렵 아버지는 나에게 A4 3장을 가득 채운 편지를 쓰셨다.


“직장 생활하느라 고생 많았다. 그동안 힘들게 일한 만큼 마음 편히 쉬는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다른 걱정 없이 다음은 평범하고 편한 직장생활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 바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큰딸인 네가 우리 가족을 이끌어야 한다. 언니로서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고 정진하길 바라고 응원한다. 사랑한다. 큰딸.”


그렇다. 나는 큰딸이었다. 내가 나를 외면한다고 해도 태생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역할과 책임이 있다. 나란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보다 어른이 되니 직장만 다니면 남들에게 보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참고 계속 일할 수도 있었다. 내가 이 순간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맏이 자격 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첫째 딸일 뿐이다. 동생을 보살피고 부모님이 의지하는 자식이라는 내 역할을 알고 있지만 잠시 내려놓자 결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집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동생의 놀림에도 그저 허허 웃는다. 조금만 기다려라. 다시 나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나의 삶은  것과 가족의 기대와 바람이 함께 엉켜있고 그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30년간 첫째로서의 책임감도 컸지만 가족 서열  나의 권위를 누리고 살았다. 지금 나는 모든 권위와  책임을 내려놓고 ‘ 바라보며 일상을 살고 있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 좋아하는 취미만 생각하며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고 성공하여 나의 자리를 빨리 다시 되찾고 싶은 욕심과 두려움은 버리지 못했다.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도 나는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수행한다. 나는 맏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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