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낼 때 더 편한 것에 대하여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예의 갖출 일도 없고, 운동할 때는 독이 되니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노메이크업.
다만 일주일에 한 번 데이트할 때는 어쩔 수 없다. 나의 쌩얼이 더 좋다고 말해주는 남자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여자의 마지막 마음이다.
파운데이션은 마무리감이 뽀송한 제품으로 골라 붉은 피부톤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얇게 바른다.
눈썹은 마스크 해도 보이는 아주 중요한 부위임으로 펜슬과 아이브로우 마스카라로 지속력을 높여 꼼꼼하게 채워준다.
립스틱은 오래 지속되는 틴트를 골라 만나기 전까지 제발 마스크에 덜 묻어라 기원하며 입술에 빨갛게 물들인다.
한 끼 먹은 이후로는 립스틱을 다시 칠하지 않는다. 어차피 마스크 쓸 테니까. 저녁때쯤 마스크를 벗을 때면 묻어있는 파운데이션과 립스틱 흔적만큼 얼굴은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헤어지기 전까지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스크로 인해 메이크업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 화장품에 대한 흥미도 못 느낀다. 집에 쌓인 화장품도 다 못 쓸 것 같은데, 굳이 일주일에 한 번 바르는 립스틱을 또 살 필요가 없다. 립밤만 열심히 바르고 있다.
여름에는 기초 화장품을 많이 쓰지 않았지만 기본으로 여드름, 피지, 유분 케어 제품과 미백 혹은 주름 기능성 세럼, 아이크림을 쓰는 편이었다.
메이크업 전에 기본으로 피부가 좋아야 한다는 원칙을 알기에 기초제품도 쌓아두고 피부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발라줬었다. 클렌져도 폼, 젤, 오일, 워터, 립 앤 아이 전용 리무버 종류별로 다 갖춰서 쓴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면서 제품을 많이 바를수록 간지럽고 땀만 더나니 선크림마저 안 바르는 하루가 더 많다. 지울게 많지 않으니 클렌져도 하나만 쓰고 드디어 다 써가는 중이다.
예전 피부 관리 습관과 비교하면 공주에서 거지가 된 수준이다.
피부가 좋아지는 제품이라면 뭐든 사서 써봤다. 인생템? 정착 템? 은 없었고 좋은 거라면 무조건 써봐야 직성이 풀렸다. 20대부터 항상 성인 여드름을 달고 살았고 각질, 유수분, 피지, 지복합성, 건조 다양한 피부 고민을 계절마다 겪었다.
한의원, 피부과 등 안 해본 시술이 없을 정도로 피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주변 사람들이 턱에 여드름이 나면 자궁이 안 좋다던데 몸이 안 좋은 거 아닌가 흘리는 말에 바로 여성 호르몬에 좋다는 달맞이꽃 종자유 건강식품을 복용하기도 했다.
하는 일도 화장품 판매니 피부가 좋아 보여야 했고, 매일 보는 게 신상이니 화장품을 다 쓰지 않아도 사고 또 샀다. 방 정리 할 때는 버리는 물건 1순위가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일 정도로 안 써본 제품이 없다.
발라야 피부가 좋아질 거라는 믿음에 끊임없이 바르고 또 바르는 것에 익숙했다.
코로나가 가져온 생활 방식은 피부 습관을 바꾸고 있다.
요즘 나의 메이크업은 세안 후 토너로 피부결을 정리하고 각질 세럼을 새끼손톱 반만큼만 발라준 후 수분 크림으로 마무리하면 끝. 수시로 립밤은 발라주고 외출 시에는 선크림까지만 발라준다.
피부에 좋다는 이유로 바르기에 익숙했던 나의 피부가 오히려 바르기를 덜어내니 이제야 숨을 쉬고 있다. 피지 조절 진정 세럼을 안 바르면 폭발할 것 같던 턱 여드름도 안정적으로 올라왔다 사라지는 중이다.
화장을 하는 날이 줄어드니 오히려 화장이 뜰 때 심해 보였던 각질에 신경도 덜 쓰이고 아이섀도, 마스카라로 매일 뭉쳐있는 눈의 피로도 사라져서 편하다.
효과 있는 화장품을 많이 바를수록 돋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피부가 오히려 안 바르니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선크림까지가 딱 적당하고 외출할 때 조금 더 신경 쓰인다면 눈썹까지는 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