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쯤되면, 적어도 나에 대해서 스스로는 잘 알지 않을까. 내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마주하는 직장에선 내가 싫어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많았고 여전히 나와 맞지 않는 다른 결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바뀔 수 없는 나다운 사람으로 자리 잡은 줄 알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 때문에,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스스로 자책하기 바빴다.
적당한 겸손, 자기반성은 더 나은 나를 만들겠지만 습관적으로 나에게만 채찍질을 하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나는 쉽게 스스로 상처를 내고 지쳐는 중이다.
얼마 전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갈 조직, 회사 일임에도 책임감 하나로 꾹꾹 눌러왔던 힘듦을 터트렸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도움이 필요하다 얘기하니 뜻하지 않는 여름 휴식을 갖게 되었다.
다들 힘든데 유난 떠는 건 아닌지, 하는 일 좀 많았다고 생색내는 건 아닌지 싶어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몇 개월 동안 묵혀왔었다. 팀원들은 막상 말하고 나니 그동안 힘듦을 알아차려주지 못했다 미안해하며 나의 짐을 흔쾌히 나눠 짊어주었다.
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하니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지친 얼굴을 보이면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애써 웃는 얼굴을 합니다. 애처로울 정도로 남들을 배려합니다.
일하면서 힘들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나를 더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힘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지켜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었다.
혹시 지나치게 성실함, 책임감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고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나에게는 엄격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질문에 답을 달아보길 추천하고 싶다.
당신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하나요?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면서 내가 똑같은 실수를 하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마지막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소홀했다며 내 잘못으로 인식한다.
나는 상대방의 기대와 기준에 만족시킬 만한 성과와 결과를 항상 보여줘야 한다. 이상주의자와 완벽주의자 사이에서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강하다.
내가 가진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업무 스킬 하나하나에 부러움을 느끼며, 부족한 점들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걱정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일상에서 자신의 '기준'이나 은연중에 따르고 있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지 의식적으로 찾아보세요. (~해야 한다, ~해서는 안된다라고 강하게 믿는 부분이 무엇인가)
책임자나 리더는 자신의 일을 공유할 줄 알며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즉각적으로 팀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어려운일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해결해줘야 한다.
퇴근 후에는 나를 위한 자기계발 시간을 꼭 가져야한다.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며 낭비하진 말아야 한다.
재택이지만 업무시간에는 절대 자리 비우지 않으며 매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상사의 알람과 부름에는 즉각적으로 답을 해야 하고 원하는 피드백을 확실하게 해줘야 한다.
주변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봐 조심하는 일이 있나요? 그것이 당신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서 항상 예의 있고 긍정적으로 상호작용 해야 한다.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우선 티 내지 않는다.
일을 못한다거나 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면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까 봐 우선 모두 알겠다고 말한다.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 내가 반대로 업무 지시하는 입장이 되어도 강압적으로 말하기보다 상대방의 업무를 고려하여 일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실수하거나 일을 제대로 해오지 않아도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떠넘기는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상대방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고 일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품었다.
타인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 생각
뭔가 하려고 할 때 주위에서 어떻게 생각할 지부터 걱정된다.
미움을 사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행동한다.
내 마음보다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먼저 살핀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에 열중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 하기 싫은 일도 참고한다.
고립되지 않으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맞춘다.
'나는 지나치게 성실하다'라고 느꼈던 적이 언제인가요? 그 상황이 자신을 힘들게 했나요, 아니면 도움이 되었나요?
재택 하면서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모니터에만 집중한다. 내가 태그 걸리는 일이 생기면 5초 이내 바로 답변하고 일을 바로 처리하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때 누가 찾더라도 빠르게 대답하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리를 한 순간도 뜨지 않는 것 같다는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을 정도였다.
나중에 쌓인 DM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빠르게 일을 끝내고 싶은 급한 성격이 한몫했지만, 항상 다른 사람들의 요청에 치이느라 에너지 소모가 크다.
어느 정도의 거절도 하면서 내 개인 업무와 조절하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줌을 요청해올지 모르는 상사들의 업무방식을 모두 맞추려다 보니 더욱더 자리 뜨는 일이 없어졌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성실함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지나친 성실함이라는 걸 느끼면서도 불안함 때문에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한다.
'이상적인 나'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습관처럼 하고 있지 않나요?
바라는 모습이 명확하게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때그때 나보다 능력이 좋고 많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역량, 모습에 부족함을 느낀다.
회사에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나거나, 영어를 잘하거나, 보고서를 잘 쓴다거나, 이해력 좋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건강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외적으로도 아름다운 인플루언서들을 보면서 시간을 알차게 쓰고 돈도 잘 버는 모습을 부러워한다.
전문적인 직종을 가졌거나 일터에서 자기만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업무 전문성을 갖춘 것 같아 부럽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하찮다고 여길 때가 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습니까?
칭찬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어색한 사람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는 남이 가진 것을 더 크게 보고 인정하기 때문에 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 할 줄 아는 정도기 때문에 특별한 능력은 딱히 없어 보인다.
약속이 없는 휴일 하루를 뒹굴뒹굴하며 보냈을 때 '오늘은 제대로 충전했네!'라고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나요?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나요?
뭐라도 남는 게 있어야 시간을 잘 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뒹굴뒹굴하며 휴일을 보냈다면 남들은 즐겁게 보낸 휴일을 혼자 뒤처졌다며 게으른 나 자신을 질책한다.
퇴근 후 유튜브나 지나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녁을 보냈을 때 가장 많이 한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거나 사이드잡, 모임 등 취미생활을 즐길 텐데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막상 뭔가 하려는 에너지는 나지 않아 무기력함을 느낀다.
의욕 있게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마음은 다른 사람을 좇는다.
최근 주위 사람에게 칭찬을 듣거나 좋은 결과를 냈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솔직하게 기뻐했나요?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나요?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번에 휴식을 취하면서 그동안 열심히 일한 모습을 인정해주는 동료들의 평가가 최근 들은 가장 큰 칭찬이었다.
남겨진 일을 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겠지만, 나의 지친 마음을 이해해주었고 그동안 책임감있게 일해왔던 모습을 다 알고 있으니 정말 쉬어야 할 때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마음 속으로 잠시 기쁜 듯 했지만, 위로 해주는 말이겠구나 싶어서 아니라고 부정했다. 누구나 이 정도는 하지 않냐며 나의 특별한 성과는 아니니 칭찬 받을 일은 아니라고 거부했다.
겸손해보이지 않을까봐 기뻐하지 않았다. 고마움을 느끼면서 내가 이 사람에게 더 잘해야겠다며 내가 할일을 떠올렸다.
오늘 하루 당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해보세요. '그렇게 느꼈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모든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심리 상담을 하면서 나의 감정을 계속 떠올리고 이야기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동안 나의 감정을 외면하면서 타인의 기분만 헤아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기분 나빴다, 뿌듯했다, 감사했다 등 몇 개 되지 않는 감정 어휘로 기분을 퉁치고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내 감정임에도 남들에게 휘둘리며 감정을 부정해야할 때도 많았다.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고 있구나 느꼈다. K장녀라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책임감과 성실함을 발휘한 건 아닐까. 성실하게 살아왔음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나 스스로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니, 갑자기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압박하는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고 싶다.
나를 옥죄어오는 것들에 마음쓰고 괴로워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