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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Jul 03. 2020

선뜻 사람 만나기가 힘들다 느껴질 때

혼자 있어주기


토요일에 만나서 술 한잔 하자


어제 직장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다. 술 게임보다는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기를 좋아하고 2차, 3차보다 주량을 넘지 않게 마시고 기분 좋게 집에 가는 걸 선호한다.


얼마 만에 갖는 술자리인지! 그동안 다이어트로 못 마신 술 얘기에 신나기도 하고 평소에 좋아하는 동생들이니 만나서 안 좋을 건 없는데 바로 답장하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가기 싫은 건지 좋은 건지도 모르겠고 가서 즐거울 생각, 불편한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가서 옛날 얘기하며 흥에 맞춰 노는 것은 즐거울 테고 반대로 그 흥에 맞춰 분위기 따라 놀 모습을 생각하니 피곤해진다.


한참을 고민하다 다이어트 중이라 술은 안될 거 같다는 적당한 핑계를 찾았다. 요즘 살도 안 빠져서 스트레스도 받고 나가서 술도 못 마시고 앉아있으면 분위기 망치니 안 가겠다 말했다.


미안, 아직 혼자 더 쉬고 싶어


동생은 ‘다이어트 파이팅’을 외쳐주며 편한 대로 하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는 동생인데 내가 마음을 숨긴 것 같아 불편했다.


그냥 속 시원하게 이실직고했다. 다이어트도 이유는 되지만 사람들 여러 명 만나는 자리에서 텐션 올려서 이야기하는 게 피곤할 것 같고 아직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장 동생은 나에게 쉬면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고 마음이 덜 쉬었는지 나도 날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함께 만나는 직장동료들은 퇴사한 직원들이었고 서로의 상황과 성격을 잘 아니 불편할 건 없었다. 피할 이유가 있었던 사람들도 아니기에 스스로 약속을 거절한 나에게 놀랐다.


같이 만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술자리를 상상했다. 지금까지 미뤄둔 근황,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분위기에 맞춰 리드하고 있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를 끌어나갈 필요는 없지만 조금만 조용히 있어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게 뻔하다.


지금까지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사내 동호회도 만들어 동료들을 모으고 인맥 연결다리가 되어 다 같이 노는 모습을 좋아했다. 모임 자리가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면 흥 넘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항상 일할 때도 사람들을 주도하고 이끄는 자리에 익숙하니 조금만 기분 다운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심각해진다.


30년간 나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최근에 적성, 이직 컨설팅을 받기 위해 성향 검사를 다시 받은 적이 있다.


결과상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사회적으로 외향적 기질을 학습해서 길러온 경우로 보인다고 했다. 항상 내 역할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리드해야 된다는 태생적 맏이의 책임감으로 성향을 만들어온 것이다.


나의 성향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데 달라진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던 내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피곤함을 느낀다. 여러 사람과 긴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게 머리 아프다. 일하면서 대화하는 게 귀찮아진다. 고객들이 나에게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서 어색하게 앉아있기 싫다. 사람들 시선 없는 곳에서 혼자 있고 싶다. 싫은 소리 하기도 듣기도 싫다. 주변에서 아무 문제없이 조용하게 있고 싶다.


혼자 글을 쓰고 책 읽기 시작했고 사람을 만나도 일대일로만 만나며 매번 똑같은 사람들과 만난다. 남자 친구, 나에게 연락 준 직장 동생, 직장 동기 언니, 개인 PT 트레이너 선생님이 끝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되도록 안 나가려고 한다.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조용히 내 방에서 끌리는 일 하는 게 좋다. 가족들과 가끔 부딪히는 것 빼고 사람 스트레스 없는 환경이 있는 지금이 너무 만족스럽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습이 가짜는 아니었을까 의심될 정도로 180도 다른 생활이다. 


최근 1년 들어서 나의 본 성향에 대해 의심하면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의 모습이 남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면적인 기질 사이에서 상황에 맞춰 행동한다. 성향 검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당시 심리상태와 조건에 따라 적응하고 유연한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지만 어떤 성향의 사람이든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도 자신의 기질과 다르게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면 에너지를 뺏길 수 있다.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 나를 버티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남을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속은 내향적인 내가 외향적으로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 필요한 연락도 꾸준히 해오고 많은 만남을 가져왔지만 지금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세명뿐이다. 암묵적 쌍방 합의로 끊어진 관계도 있고 내가 싫어 거부한 관계도 있지만 결론은 모든 관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부질없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내려놓을게 뭔지 알 것 같아 좋은 인생 경험 중이라 생각한다.


내가 외면했던 또 다른 나와 만나면서 충분히 스스로를 달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몇 년 간 방전된 상태를 고독하게 즐길 혼자만의 시간이 심심한 듯 즐기고 있다.


그때 생기는 사람 간의 거리를 두려워하지 말자.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피곤해질 필요가 없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평생 혼자 살지 않는다. 그렇게 떠나갈 사람에 대해서 미련 둘 필요 없었으니 적당히 관계를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나는 핸드폰 데이터 연결이 끊겼나 싶어 나에게 카톡을 보내본다. 고장인가 싶어 확인할 뿐이다. 하루 내내 카톡으로 말 걸어주는 사람 한 명, 가끔 두 명뿐이지만 이런 자극 없는 일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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