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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Jul 19. 2020

번아웃 극복하기

나를 사랑하는 연습


평일 오후 한시쯤 덕수궁 정동극장 옆길을 걸었다. 오피스룩에 분홍색, 빨간색, 검은색, 하얀색 자신만의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시간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날씨도 좋아서 유독 더 많은 직장인들이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즐기는 듯했다. 저마다 일하는 회사, 직급, 이름을 내걸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치듯 지나가도 눈에 띄고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봐도 유독 목에 걸린 사원증에 시선이 꽂힌다.


사원증을 반납한 지 삼 개월이 지났다. 없어야 살 것 같던 날도 쉬다 보니 그리워질 때가 있다.


퇴사 후 가장 난감했던 일은 어른들의 자기소개란 직업으로 대체된다는 것이었다. 운동하러 갈 때면 강남역 신분당선 5번 출구를 나와 걸어간다. 출구 앞에는 분양 설명회를 데려갈 고객을 스캔하는 또 다른 직장인 부대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다짜고짜 학생이신가요?,

직장인이신가요?부터 물어보기 시작한다.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단순히 한 단어로 끝나면 되는 질문에도 괜히 민망함에 말을 더듬는다. 다른 이야깃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직장인이라고 대답하고 대화를 끝낸다. 이럴 때는 조금 더 동안이었으면 학생이라고 해볼 텐데 아쉽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출근 안 하고 쉴 수 있다는 그 자체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위로하며 헬스장으로 향한다.


삼 개월 정도 나에 대한 시간을 가지면서 퇴사 때 생각 못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번아웃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잦은 직무 스트레스 이상으로 모든 사고, 신체 반응이 무감각해진다. 이 시기에 나는 흔히 말하는 MBTI 성향, 사건을 보는 관점도 크게 변했다. 이 때는 병원을 가보고, 새로운 취미로 관심을 돌려봤지만 막상 출근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주변의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무기력함에서 오는 피로감을 스스로 벗어나기란 굉장히 어렵다. 또한 번아웃에 대한 해답이 휴식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퇴사, 무작정 쉬기란 더욱 어렵다.


직장 스트레스라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심하게 몰입되어 번아웃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직장 스트레스라고 보기에는 무겁고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했던 것 같다.


나는 사원증을 내려놓고 오로지 나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줄이고 그때그때 끌리는 책을 담아 독서하고 한동안 재미 붙인 블로그 포스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다이어트 명목으로 운동에만 집중해보고 이런저런 글도 썼다. 매주 일요일에는 맛집, 음악 좋은 카페, 소품샵을 찾아다녔다. 일할 때는 패턴 없이 하루하루 그날만 충실하게 살았다면 정해진 일주일 일정을 따라 생활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월 목표를 생각하고 몇 개월 간의 계획을 세웠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집중하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취업에 대한 불안은 눌러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날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반은 후회 담긴 회상이긴 했지만 당시 나의 번아웃에 대해 고민했다.


힘듦 자체에 대해서 한 발짝 물러나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면 존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여유를 가진다는 건 힘든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이다. 외면하지 않고 힘든 것은 힘들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감정을 잘 풀어내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생각, 행동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니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오히려 존버 하려 애쓰다가 더 힘들어졌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버티기에 애쓰지 말고 나를 사랑하는데 애썼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나를 아끼고 살펴보기보다 번아웃으로 지친 나를 일으키려 다그치기에 바빴던 지난날에 미성숙한 내가 아쉽다. 나를 다독이는 법을 몰라 더욱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던 서툼이 제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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