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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Dec 13. 2020

몸은 감정을 담고, 닮는다

한 주간 마음 건강 챙기기

퇴사 후 하루를 온전히 내 시간으로 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섬세하게 느끼는 일이었다.


그동안 규칙적인 직장생활을 비롯해 남들과 부대끼는 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쓰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런 사회생활이 나쁘지 않았고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외향적 기질을 발휘에 힘껏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나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타인과 신뢰를 바탕으로 만든 약속을 지키면서 정작 나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알게 되고 얻은 것도 많았지만 불현듯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무감각했다. 미세한 통증, 피곤함, 어지러움, 불쾌함, 상쾌함, 가벼움 등 몸이 느끼는 반응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퇴사를 마음 먹을쯤 휴일에 스트레스를 풀어보려고 밖에 나가서는 3시간 이후부터 어지러움증과 울렁거림을 종종 느꼈고 5시간 이상 밖에 있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출근해서 일할 때는 이런 어지러움, 울렁거림은 없었지만 풀리지 않은 만성피로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퇴사하면 이 모든 증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 몸 상태는 업무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이고 근본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모두 해결될 문제라고 여겼다.


하지만 일을 그만둔 뒤에도 운동을 병행하며 체력을 다시 끌어올려보려 했지만 증상이 빠르게 나아지지는 않았고 서서히 조금 괜찮아질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몸이 담고 있는 감정의 무게가 컸던 터라 비워내는데 시간이 걸렸다.


일도 안 하는데
몸도 안 좋아?


일 안 하는 백수에게는 모든 걱정,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부인 눈에 퇴사 후에도 골골대는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은 1년 하든, 10년 하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지금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다. 세상은 내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나의 힘듦, 아픔에 대해서는 타인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선을 넘는 타인의 이러한 말들이 또 다른 상처를 준다.


그런 시선에 할 말을 잃고 나도 그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보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몸도 감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닮아 표현하며  시간은 감정을 담고 닮은 시간의  배가 걸린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까지 서서히 쌓아온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몸이 오랜 시간 담고 있으며 해소되는 것들은 배출하고 해결하지 못한 잔여물은 남아있었다. 이를 표현해도 바빠서 알지 못하다가 이제야 알게 된 것뿐이었다. 몸은 항상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지난주 내 이력서들의 마지막 면접 스케줄이 있었다. 이다음으로는 잡힌 면접도 없었고 올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어 합격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두 달 사이에 몰아치는 자기소개서와 면접 전쟁을 멈추고 싶어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며  다른 회사 공고에 지원을 안 하기로 했다.


마지막 본 면접은 정확한 발표일이 없어 일방적으로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려보겠다고 했지만 내심 안되면 대안이 없던 상황이라 다음에 내 행보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무작정 회사에 결과를 재촉할 수도 없고 다른 곳에 이력서 내는 것도 집중되지 않아 불안한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면접 본 당일을 곱씹으며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안된다면 이제 어디에 지원해야 할지 막막함에 온갖 회의감, 후회, 불안 부정적인 감정이 앞섰다. 지난 경력과 가장 적합한 직무였기 때문에 욕심도 났고 취준 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곳에 지원할 에너지와 의지도 잃은 상태라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한강을 걸으며 에어팟을 장착하고 무작정 나가 10km 왕복을 걸으며 얼마 남지 않은 연말이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텐데 시간만 흘러 보낸 건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을 쌓고 쌓아 눈덩이처럼 큰 짐을 얹고 집에 돌아와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5일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오후 갑작스러운 합격 전화를 받았다. 다음 처우 협상 단계 서류를 준비해달라는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다행이고 기쁘면서 이 상황이 진짜인지 헷갈리고 이후 과정에서 잘못되지는 않을까 또 걱정을 쌓기 시작했다.


합격 기쁨도 잠시 나는 또 다른 걱정, 불안에 시달렸다. 아직 입사일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서류 검토하는 기간을 거쳐 협상 과정에서 잘못되는 것은 없는지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합격 통보를 받고도 이틀간 몸살을 앓았다.



걱정으로 시작한 일에 해결이란 종착지가 없었다. 걱정에 걱정을 낳고, 불안을 동반하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새로운 짐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무언가에 대해 걱정부터 하기 시작하면 나는 평생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몸은 이런 나의 감정 패턴을 알고 몸살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생각만으로 앓던 통증을 몸으로 표출하며 더 이상 아파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이런 반응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병이 몸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직접 이런 좋은 경우에도 몸살 후유증을 겪는 걸 보면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듯했다.


스트레스에 약한 걸 알면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만드는 꼴이니 생각 회로에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때 생기는 병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진정한 내 정신, 신체의 주인이라면 몸이 자각하기 전에 통증을 걸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을 잘못 담은 몸은 신체적인 고통을 가져온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 바꾸기 어려운 것도 없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잠식하는 감정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느끼며 잘못 담긴 감정을 덜어내는 연습을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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