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 or not to be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자살을 생각한 건 스물한 살 이후 처음이 되었다.
단순히 내뱉는, 죽고 싶다가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발견 후에 가장 가족들에게 피해가 덜한.
그런데 전자는 시뮬레이션이 가능했지만 후자는 더하고 덜하고 그런 게 없었다.
가족들의 심정적인 충격보다도, 실제로 몸뚱이는 사라지지 않으므로 장례라던지 화장이라던지 그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다 마음도 들지만 돈이 드는 문제였다.
장례는 필요 없다고 유서를 쓰고 화장 비용 만이라도 마련해 놓고 죽어야겠다.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찾기 시작했다. 9월의 내 생일까지 힘내보고, 안되면 죽을 심산으로 이력서를 뿌렸다.
연차가 쌓여서 반대로 연락 오는 곳은 적었는데 적어도 왕복 세 시간 거리를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무응답(불합격)에 무뎌지는 법도 배웠다.
나는 단순히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사라지고 싶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나는 충분히 인생에 최선을 다했으며 더 이상 최선을 다하는데 지친 것이다.
더 이상 기력이 없었다.
나에게는 갚아야 할 부모님의 대출도 있었고 오빠랑 단둘이 살고 있어서 내 몫의 생활비만 해도 숨만 쉬어도 돈이 우습게 나갔다.
올여름은 별로 안 더운데? 하니, 날씨는 이상한 장마와 함께 지독하게 더워지기 시작했다.
면접을 가서 낯선 동네를 10분 걸으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 땀투성이로 회사에 가 내향적이지 않은 척하고, 아무 마음의 병도 없는 척 연기하고 나오면 그냥 아스팔트에 녹아 사라지고 싶었다.
일자리는 대부분 강남이었는데 돌아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낮의 전철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싶었다.
쿠팡 알바도 종종 같이 했는데 육체노동을 하면 잠이 잘 올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온몸이 쑤셔서 잠을 더 이루지 못했다.
집은 더웠고 오빠는 옛날 사람처럼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았다.
내가 체력이라도 좀 좋으면 좋을 텐데.
운동을 해야 하나 생각해도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일말의 의욕이 없었다.
그즈음 정말 무섭게 느껴졌던 것은, 우습지만 죽음이 정말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는 점이었다.
아. 머지않았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렇다. 사실은 죽고 싶진 않았던 거다.
그냥 이 모든 상황과 나의 병이 정리되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안되니 그만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말해보세요.“
“저는 긍정적입니다.”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하면서 내가 내면은 긍정적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것보다 힘들던 시기에도 ‘나는 잘 풀릴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법이 풀어진 지금. 나는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죽음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잠을 청했다.
면접이 있거나 알바가 있는 날이 아니면 침대에서 잠만 잤다.
살고자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냈다.
취업하면 연기를 배워볼까? 극본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년에는 공모전에 첫 도전을 해봐야지.
하지만 그건 모두 살아있을 때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