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곁들이다
스테이크 밀키트를 사면 같이 딸려오는 가니쉬.
나는 이걸 아주 좋아한다.
여름의 내 인생은 전자담배와 잠. 불안과 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돈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나는 내 자신을 위하는 방법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편해지고자 약을 먹는 것.
담배를 태우는 것.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잠을 청하는 것.
그걸로 우울을 태우는 것.
일어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나는 소위 루틴 있는 삶을 지향하지 않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살아가는 타입이었다.
지금도 딱히 루틴을 만들고 싶다는 거창한 생각은 아니지만, 내가 입는 옷은 꼼꼼히 따져보며 사면서 (내가 옷을 좋아해서겠지만.) 내가 먹는 것, 내가 생활하는 것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이어트 때문이 아닌 돈을 아끼려 1일 1식을 하면서 그마저도 그냥 대충 참치에 밥 비벼 먹는 식욕 없는 삶.
침대와 한 몸이 돼 옷걸이가 된 실내용 자전거.
한때는 매일같이 30분씩 타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좀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안다. 이런 마음은 조증 삽화의 하나로 뭔가 긍정적인 마음이 샘솟지만 자고 일어나면 해내지 못한 또 하나의 것으로 남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채식이 아닌, 채소 위주의 식사가 아닌 채소를 ‘곁들이기’로 했다.
그 주 일요일에 조증 삽화가 정말 심했는데 SNS에 글을 연달아 올리고, 하루종일 폰을 붙들고 있었다.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고 월요일에 준다던 면접 결과와, 화요일에 잡힌 다른 면접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의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면 돼도 못 나가거나 며칠 다니고 그만둘 것 같았다.
나는 후회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은 진심이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채소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실내용 자전거를 다시 타는 정도였다.
그걸로 불안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를 위한 첫걸음을 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휴가철이었다. 친구들은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갔고 선물을 사 온다며 뭐가 가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뭐든 좋았다. 그 마음이면 사실 충분했다.
SNS에 올라오는 부산 바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인천과, 수학여행으로 간 제주도 외에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애초에 물놀이도 여행도 관심이 없었지만 그들은 꼭 딴 세상 사람 같았다.
같은 지구에 사는가 싶었다.
올림픽이 개막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보지 않는 나를 빼놓고 시간은 착실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스테이크의 가니쉬 외에도 나는 곁들임 음식을 좋아한다.
메인 디쉬 옆의 양배추나 감자 샐러드 같은 것.
식전 스프 같은 것.
마지막으로 타인과 음식점 창가에서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 지 몇 달이 흘러 있었다.
계절은 쑥 쑥 자라는 것 같았다.
태양을 바라보다 재채기를 했다.
약을 먹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나는 노력해야 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