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에서
물음표 투성이의 장마가 지나가고 날은 더웠다.
찌는 듯한 더위였다.
나는 지쳐 있었다.
울증도 조증도 아닌 차분한 상태에 사로잡혀 있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것이 아닌, 꿈도 희망도 상관없는 순간들은 며칠간 이어졌다.
면접은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합격 연락도 없고, 왕복 3시간은 우습게 넘기는 의미 없는 면접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새 병원에서 준 약은 잠이 안 왔는데 아침 약을 같이 먹으면 좀 나았다.
평생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일은 없는 좋은 천성을 타고났는데 대신 나는 내 지나간 날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이제와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에게는 없는 작은 케이크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초가 불타고, 그들의 얼굴은 옛 가로등 불빛처럼 밝았다.
얼어 죽기엔 너무 더운 날. 여름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나는 창문 밖에서 그들을 쳐다봤다.
보통의 행복. 그 작은 케이크를 어떻게 손에 넣었나 궁금해하면서.
울증이나 조증 삽화보다 위험한, 차분하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나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며 나는 남는 시간에 깨어있지 않기 위해 애썼다. 꿈을 꿀 땐 안전했으니까.
며칠간 한 번도 웃지 않은 날.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핸드폰을 하지도 않고 그냥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시간은 창 밖으로 타임랩스처럼 흘러갔다.
이력서를 내고 잊고 있던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와 잡았지만 별로 내키진 않았다.
거절도 지겨웠다.
강남은 집에서 가장 멀었다. 면접 참석의 회신을 하고도 아무런 기대가 없는 나를 알았다.
약은 훌륭한 보조도구일 뿐 근본적으로 다스리지는 못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노력하고 있는데 왜 내 몫의 소박한 케이크는 주어지지 않는 걸일까?
그릇된 충동을 막기 위해 약을 먹고 하루의 반을 신생아처럼 자고, 무르익는 여름과 보지 않는 올림픽의 뉴스를 보았다. 새벽은 고요했고 창 밖은 푸르렀다. 새벽 5시에 뜨는 해는 달처럼 차가웠다.
의욕은 전혀 나지 않고, 그럼에도 무덤덤하려 애썼다.
내가 죽으면 아마 많이 놀라겠지.
가족들은 내 병에 관해 전혀 몰랐다.
3년만 더 살아보자 3년 더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자.
자기 전, 생각하고 잠들어 일어나서 울었다.
남은 인생 3년.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