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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 Aug 19. 2024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13

주체적인 삶

나는 내 감정에 끌려 다닌다.

와다다다 속얘기를 쏟아냈다가, 이내 후회하고 풀이 죽는다.

꼭 조울증의 얘기만은 아닐 테지만 조울증이라면 더 크게 다가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전, 약을 하루치 더 먹은 것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하루치 모자란 채 밤을 샌 날. 아침 10시 반을 향해가는 전자레인지 시계가 깜빡거린다.

다 망했다는 생각이 엄습했고, 나는 차분해지고자 애썼다.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수의 과거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상황에, 환경에, 책임에 이끌려 포기한 것들이 식스센스가 눈뜬 듯 보이기 시작하고 할 수 있다면 당장 어디로든 뜨고 싶었다.

그날 아침은 회피가 후회보다 좋아 보였다.

주변에서 걱정 삼아하는 충고에도 맘이 까딱하지도 않았던 나는 가족에게 깊게 상처받아 있었다.

여지껏 가족을 1순위로, 나 자신을 2순위로 두고 생활하며 후회한 적 없는 과거가 간단히 흑화 하는 걸 그 아침에 생생히 보았다.


간밤의 나의 심정은 다음과 같았다.



아주 깊고 진지하게 자살에 관해 생각했고, 반면 내가 왜? 하는 마음의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정말 긴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나는 ‘주체적으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처음으로 생각하는 거였다.


이제 와서 잘못 살았다고 인생의 모든 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내 눈에서 콩깍지는 오랜 시간 끝에 벗겨졌고, 이제 홀딱 벗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조울증이지만. 불안장애지만. 어쩌면 그건 일정 부분 삶에 대한 나의 태도 때문이었지는 않을까?

나는 이래야 해.

가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해.

가족은 나의 삶의 이유야.

내가 좀 희생해도 행복은 그거야.


‘나는 원래’ 라는 말은 정말 슬픈 말이다.

나는 그걸 그 아침, 처음 알았다.

원래 라는 건 없다.

아침은 서늘했고 날씨는 좋았다. 나는 깨달았을 뿐 여전히 막막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 없이 구직 상태고 경제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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