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패딩이 걸려있다
새벽에 너무 먹고 싶어서 며칠 동안 참았던 족발을 시켜 먹었다.
사실 돈이 들어오는 말일 전까지 여유가 없었는데 병원을 미루기로 하고 충동적으로 시켜 먹었다.
약간, 이 기회에 단약을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다.
약의 효과는 잠이 오는 것 외에 피부에 와닿는 게 크지 않아서 되려 불면증만 얻은 것도 어떻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돈도 써버렸고, 전화해서 예약을 한 2주 뒤로 미루는 것만 남았다.
그러다 문득 방을 바라보니 패딩이 걸려 있었다. 8월의 방에.
우울, 혹은 조울증 환자의 방이 대부분 정리가 안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는데 정말로 그랬다.
나는 2월에 입고 다니던 패딩을 8월에도 내 방에 걸고 있었다.
책상은 쓰지도 않는 화장품이 늘어서 있고, 옷과 책은 아무렇게나 쌓아져 있었다.
나름 정리를 한다고 한 건데 그건 세간이 말하는 정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라볼 뿐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방만 쓸었다.
어떻게 정리하지? 보다, 어떻게 정리하는 법조차 잊고 있었다.
1년 여를 방치된 내 방에서 나는 불안장애와 공황까지 얹어준 마지막 회사, 대표를 미칠 듯이 증오했다.
극단적이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건 아니더라도 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회사는 직원들을 가스라이팅하고, 폭언을 하고 나중에는 월급까지 밀렸다.
나는 탈출했지만 탈출한 곳도 천국은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살면서 취업이 안된 적이 없던 나는 갑작스레 불안과 공황을 얻으며 의기소침하고 지레 겁을 먹었고, 그 사이 먹은 나이와 많은 경력이 도리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구인하는 곳은 3,4년 차 경력자를 찾았고, 11년 경력인 나는 면접 기회조차 잘 오지 않았다.
막상 어쩌다 면접에 가면 연봉이 안 맞거나, 그래서 낮춰 부르면 ‘실력 없는 거 아냐?’ 하는 시선을 맞았다.
지난달에만 7군데 넘는 면접을 봤지만 전멸한 나는 하루에도 조증과 울증을 오갔다.
그래. 어차피 유학을 결심한 거, 뭐든 하면 되지 뭐.
아침엔 이랬고, 아니야. 나는 안될 거야. 유학에는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벌 기력도 기회도 없어.
작은 방 한구석에 앉아 펑펑 울고 싶었지만 왜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오르내리는 기분이었다. 중간이 없었다. 잔다르크처럼 용맹했다가 패배자 선고를 받은 듯 기죽었다.
진정해.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돼 내는 게 가장 효과는 좋았다.
한겨울에 패딩을 챙겨 입고 집 앞 편의점에 가서 좋아하는 음료수와 담배를 사 오는걸 나는 좋아했다.
6개월째 걸려있는 검은 패딩을 보면서 나는 겨울을 맞이할 수 있을까? 덤덤하게 의문이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실 내가 겪은 10대와 20대를 생각하면 맨 정신인 게 이상하다는 결론을 처음으로 내렸다. 내가 내게 하는 십몇 년 만의 처음의 위로였다.
나는 늘 혼자였고 부모의 부재와 부채를 감당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다. 잠잘 시간도 없는데 우울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망가진 게 아니라 이제서야 내 마음이 울분을 토해내는 것이다.
패딩은 사람들이 많이 입는 뭐 좋은 브랜드도 아니었다. 집 앞 용으로 저렴하게 샀는데 가장 많이 신세를 졌다.
저걸 치울 수 있을 때 나는 좀 나아지는 걸까?
아마도 겨울까지 살아있다면 걸린 그대로 세탁소에 맡길 거라는 나의 게으름도 알고 있다.
여름은 길었다. 체감상 더 그랬다.
나는 여름을 저주한다.
시간이 흐르면 이때를 미화시킬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