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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 Jul 28. 2024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7

피가 날 때까지

어릴 때도 없었던 나쁜 습관이 생겼다.

손톱 물어뜯기는 피가 엿보일 때까지 계속됐다.

간지럽지도 않은 다리를 피가 나도록 긁어, 딱지를 만들어 내 다리에는 온갖 사라지지 않은 흔적들이 가득하다.


2024년이 되고 나는 깊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조울증에 불안장애, 공황까지 겹치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다.

샤워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해 왔던 모든 일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방은 당연히 엉망이었다.


나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명상 유튜브나 앱도 찾아 시도를 해보고 꾸준히 산책도 나가려 했지만 모든 건 맘 같지 않았다.

저금한 돈도 떨어져 가 재택근무 알바 모집을 보는 게 유일하게 생산적으로 쓰이는 시간이었다.


집에 있는 게 눈치가 보이고 불편해졌고 뭐라도 나가보자! 해서 학원을 등록했지만 개강 전날에 포기했다.

도저히 주 2회를 다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에겐 학원에 간다고 했으므로 주 2회. 근처 카페에 가서 시간을 죽였다.

폰도 잘하지 않는 내게 그건 정말 고역이었다.

남들은 카페에서 글도 잘 쓰던데 나는 집이 아니면 글도 써지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 상상하던 이맘때 어른의 모습은 KFC 버킷을 퇴근길에 사서 집에 오면 냉장고에 좋아하는 맥주가 가득한 삶이었다.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좋아 보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말수가 적고, 집에서만 목소리가 컸던 나는 학창 시절도 쉽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었는데 괴롭히는 애들은 없었지만 좀 떨어진 곁에서 속닥속닥 자기들끼리 나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말했다.

학교는 최악이었고 친구들과도 반이 다 떨어져 나는 은따 아닌 은따였다.


유난하다 예민하다 특이하다 혼자 사는 것 같다


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다.

불안도 조울도 기질일까? 유전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자살해 한 번도 뵙지 못한 막내 삼촌을 얼굴도 모르면서 떠올렸다.


두 달간 집을 나서 카페에서 딸기주스를 시키고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봄이 끝나고 여름이 오는 게 두려웠다.


슬슬 구직활동을 시작한 것도 여름 같은 봄이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몇몇 회사에 붙었지만 막상 출근을 하려고 하자 가슴이 터질 듯이 뛰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결국 출근을 하지 못하고 전화로 병에 대한 설명과 사과를 하면 어떤 대표는 몸조리 잘하라고 했고 어떤 대표는 날 선 말투로 ‘알았다’ 고 했다.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고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나는 그렇게 출근에 실패하고 한동안 또 피가 나도록 벅벅 다리를 긁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약은 나날이 추가되어 가지만 내 눈에는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6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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