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 제가 깎는다
조울증 환자 중에는 충동을 못 참고 자해를 하거나 쇼핑중독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머리를 자르는 걸로 시작됐는데 미용실에서 자르는 게 아니라, 심야의 심야, 울컥 올라오는 날이면 가위를 들고 스스로 잘랐다.
덕분에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는 단발로, 숏컷으로, 또 자라면 단발에서 아주 남자아이 같은 숏컷까지 이어졌다.
그러면 머리를 붙였고, 또 충동이 오면 붙인 머리를 그냥 다 잘랐다. 최근 2년은 그 반복이었다.
회사에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느낀 어느 날, 나는 가발을 쓰고 있었다.
머리가 너무 짧고, 막 잘라서 맨머리로 다닐 수 없었다.
부모님한테도 야, 너, 라는 식으로 불려 본 적이 없는데 매일 야, 너, 하고 불리면서 내 업무가 아닌 걸로 욕을 먹고(이건 나 외의 직원이 모두 같았다.) 월급이 밀리기 시작한 날 대표의 니트는 <오프 화이트>였다.
아무도 월급에 대해 우물쭈물 말 못 할 때 회의 때 할 말이 없냐는 질문을 듣고 월급 정확히 언제 들어오냐. 고 나는 물었다.
대표는 당황했고 금방 넣어준다고 말했다.
구슬땀을 흘리는 알바들이 옆 창고에 있을 때 대표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네가 그래도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애들 좀 야 너 하고 반말하고 그래. 그래야 분위기도 풀어지지.”
“저는 제가 어리다고 반말하면 싫던데요.”
분위기는 싸해졌고 어물쩍 다른 얘기로 넘어가면서 나의 퇴사 각오는 굳혀졌다.
나는 분명 본 업무가 있어서 들어갔는데 본 업무 시간보다 박스를 싸고 20kg짜리를 지하에서 들고 올라가고, 기본도 안된 농담과 반말을 들으며 1년을 결국 채우지 못했다.
출근 생각만 해도 숨이 안 쉬어지고 그렇게 이미 있던 질병에 공황장애를 플러스로 얻게 되었다.
머리는 당연 엉망이었다.
문구용 가위로 자른 삐쭉삐쭉한 머리.
키도 큰 나를 남자인 줄 알고 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9개월의 회사 생활 끝에 공황을 얻고, 자발적 퇴사라 실업급여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기력함에 빠져들었다.
머리가 그러니 나가기도 싫었고 ‘회사’ 생활이라는 걸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침대에서만 머물렀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단발까지만 긴 뒤에.
그게 나의 주문이었지만 직장을 다니며 집에 와서 매운 음식을 폭식한 나는 약 때문에 찐 살에 살이 더해지며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나는 분명 빛이 났었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약을 몇 봉이나 털어 넣고 잠들고 다음날은 뜬 눈으로 지새우고, 다시 머리를 자르고 후회했지만 내 손아귀엔 뭉텅이진 머리카락만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