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hee Jul 24. 2024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3

자살할 거야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사원수 4명의 작은 회사였는데 복지가 좋았다.

대표는 둘로, 둘 다 사업 10년 차지만 나보다 2살씩 어렸다.

여자 대표와 남자 대표는 연인 사이였는데 함께 동거를 하며, 한 개를 같이 키우고 학생 때부터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남자 대표와 나는 업무상 일을 거의 같이 했는데 그는 내가 만일 남자로 태어났다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비상구 계단으로 불러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사업적으로 얽혀 있고 복잡하다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전 관계를 정리하고, 차이던 어떻건은 그다음 문제로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를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나는 거절하고, 만약 불편하시면 제가 회사를 그만둘게요. 하고 전했다.

정말 그만두기 싫은 좋은 회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돼요. 이전처럼 대해주세요.”

하지만 저녁마다 개인적 카톡이 이어졌고, 우리는 회사 유일한 흡연자들로 담배를 같이 태우는 사이였는데, 그때마다 전과 다르게 느끼해진 말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참다못해, 이거 대표님한테 얘기해도 돼요? 하고 말했더니 그는 입을 다물었다.

걸려서는 안 되는 일은 저에게도 하지 말아 주세요. 그걸로 퇴근 후의 카톡은 끝났다.


점점 수척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못 본 척하며 가시방석으로 지내던 중. 그가 그즈음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문의 이메일이 오기 시작했고 어느 날 밤에 ‘자살하겠다.‘고 왔다.

나는 내일 이야기하자고 달랬다.


“자살하고 싶으면 하세요. 저도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그런 시기를 지나서 여기까지 왔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랑을 얻으려고 하시는 거면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류의 방식을 굉장히 싫어해요.”


그리고 그에게 나도 정신과를 다니고 있고 조울증이라는 걸 사회에서 안 사람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다.

그는 강경한 내 태도에 한 달 넘게 회사에 나오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1년 정도 어영부영 나는 더 회사에 다녔다.

더 이상 그가 사랑도 자살도 입 밖에 내는 일은 없었다.


회사는 자의가 아니라 폐업으로 그만두어 나는 실업급여를 탈 수 있었다.

둘은 결국 헤어졌고 이별이 원인이라 회사도 잘해보려고 이별 후에도 반년을 버텼지만 결국 정리한다고 여자 대표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한 달간 일을 구할 기간이 주어졌지만 나는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좀 쉬면서 생각할 계획이었다.

나의 조울증을 진단한 페이 닥터는 여전히 그 병원이 그렇듯 1년이 지나자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고, 내가 따라가기에 병원은 너무 먼 곳이었다.


회사와 믿고 있던 선생님을 동시에 잃고 나는 내 조울증이 어디서 온 건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에 은따를 당한 것?

학창 시절 새엄마에게 목이 졸려서?

아빠의 연이은 사업 실패에 의한 가난?


결론은, 그랬다. 이제 남은 가족의 안위. 그리고 내가 이 집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랬다.

오빠는 아빠의 빚을 갚느라 좋은 대학을 중퇴한 뒤 인생에 대해 완전히 기대를 접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1년 전쯤 연락이 닿았지만 여전히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은 나를 통하고가 아니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오빠가 군대 간 단칸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

실패했지만.


회사를 그만둔 뒤 남자 대표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차단하고 침대에 누워 낮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전 03화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