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hee Jul 24. 2024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1

여자친구

강박증이 발현된 건 열여덟 살. 그때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을 찾아볼 여력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남들 다 그렇게 콘센트를 확인하고, 문이 잠겼는지를 확인하는 줄 알았다.


심각함을 느낀 것은 삼십 대가 되어서 이미 잠겄음이 확실한 문을, 돌아와 확인하면서 지각이 이어졌을 무렵. 이미 회사 화장실에서 열 번씩 손을 씻고 있었다.


그즈음에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었다. 한 번도 여자를 만난 적도 설렌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애는 처음으로 내가 나의 정신과적 문제를 죄책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옆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 애에게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두 번의 퇴짜를 놓고도 여전히 우리는 만나고 연락했다.


그 애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죽은 우리 엄마와 생김새가 아주 닮았고, 왜인지 엄마가 나를 구하라고 보내준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세 번째 고백에 그러려 마했고 그때부터 난생처음의 여자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두려워하지 마. 병원에 가보자.”


발병이 10년이 다 되어가면서 폰 사진도 강박증에 같은 사진이 세 장씩 저장되어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설득이 이어졌다.

나는 병원에 그렇게 처음 가게 되었다.

설문지들을 마치고 처음 진단받은 것은 고도의 강박증과 우울증. 나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약을 처음 먹었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갑자기 세상 모든 소리가 선명해지며 양쪽 귀로 온갖 소음들이 거름망 없이 뚫고 들어왔다.

약을 먹으면 당연히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데 빠지는 사람이 있다면 내 경우엔 찌는 경우였다. 168cm, 48kg였던 몸무게는 언제 뼈말라였냐느니 쑥쑥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우울증은 심해져만 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 여자친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했던 것 같다.


약도 복용하고 살도 쪘는데 나빠지기만 하던 3년.

그런 우울한 모습도 너의 일부이고 네가 너무 ‘근사’하다던 여자친구는 떠나며 처음이자 마지막일 여자와의 연애가 끝났다.


나의 매력이라던 섬세함은 타인을 지치게 하는 우울의 전파로, 나의 순수한 모습은 나약함으로 뒤바뀌어 그 애는 나를 떠났다.

나에게는 나아지지 않는 약을 한 움큼 쥔 주먹과 거리의 네온사인이 남았다.

이전 01화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