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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 Jul 24. 2024

그리고 2025년이 되었다 2

챌린저스

겨울의 밤 8시는 고요하다. 다들 침묵 수업을 하듯 입 다물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병원에서 나는 새로운 담당의를 만났다. 그 병원은 페이 닥터가 1년마다 바뀌어 나에겐 벌써 세 번째 의사였다.

우울증 약을 먹어도 신경쇠약에 가까워져 회사를 마치고 야간진료를 간 나는 지쳐 있었고, 선생님은 문득, 데스크탑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말했다. 커브드 모니터 너머로 심각한 얼굴이 보였다.


“혹시 조울증은 아닐까요? 양극성 장애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 눈에 보일 정도가 아니면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요.”


약은 완전히 갈아 엎어졌고 나는 (탄산) 리튬(그 리튬 맞다.)이 섞인 봉지를 들고 가 복용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라는 질문에 가족들이 잘못될까 두렵다고. 그 대신 강박적 사고의 행동을 계속해 불안을 누르려던 나는 3년 사이 강박증은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그날 탄산 리튬과 그 외 등등을 삼키면서 병의 한 챕터가 끝나고, 다른 챕터가 열리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미지의 것이 두려웠고 인간불신까진 아니지만 그렇게 거절할 때 다가와 곁에 있어준다고 했던 여자친구가 내 병을 못 이겨 떠난 것이 괘씸했다.


그런 내 마음이 어떻던 약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아침엔 죽고 싶다가 저녁엔 반고흐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걸 이제와 돌이켜보면 조울증이 맞았던 거다.


“우리는 한 팀이에요.”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거대 축구팀을 거느리는 순백의 구단주처럼 보였다.


“조울증이 맞는 것 같네요.”


그렇게 F42(강박증)에 F31(조울증)이 처방전에 붙었다.

의사는 마블 히어로의 발끝도 못 따라간 가냘픈 남자였지만 기꺼이 그의 구단에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어쩌면 우리 모두 매일에 도전하는 걸지도 모르죠. 소희 씨는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고자 하는 인생의 욕구가 있는 거예요.”


병원에 매일 바꾸는 생화의 이름은 모르고 맡을 수는 있는 향. 우리는 어느 정원을 모티브로 삼아 솔직히 우습기까지 한 인테리어 안에 레고처럼 앉아 있었다.

내가 가려는 골은 우승이 아니었고, 이것은 게임이 아니었지만 나는 여느 때보다 열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즈음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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