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페루 리마에서(32)

7개월 반

by 윤메로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 풍경들이 지나간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거나 들여다 보더라도

발걸음이 이내 움직인다

뭐든 하나 멈추지 않고

배경들이 스르르 자연스럽게 흐른다

겨우 7개월 반만이다


아무리 사진으로 찍어 내려해도 이 공기의 흐름과

습기와 미세한 새소리까지 담아낼 순 없기에

눈으로 바라보고 슬며시 미소지으면 또 걸을 수 있다


'난 최선을 다 하고 있어 항상 그러려고 해'

밤 12시에 남편이 퇴근하고 잠시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의 주문을 나와 함께 나눈다


'그렇구나 고생한다 수고했어 얼른 자'

이젠 그저 안쓰러워 하고 싶은 말은 누르고 거기까지만


'잘 다녀와 틈틈히 스트레칭 좀 하고..

아무리 바빠도 90프로만 일하려고 해봐

조금이라도 자기 삶이 있어야 해'

아침에 아이들과 스치며 인사하며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눌러 놓았던 말을 꺼낸다

하품을 하며 남편은 어어 하고 엘레베이터에 오른다

실상은 99의 일과 1의 자신이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보기 힘든 아빠지만

다행히도 세 아이들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고

그동안 한국에 돌아가서 이것보다는 조금 더

당신의 삶을 살라며 이야기 하던 날들도 지나

파도가 오고 가듯 그저 몸을 맡긴채 살고 있다


딸은 얼마전부터 친구 가족과 서핑을 시작했다

'탈 수 있는 파도인지 못 타는 파도 인지 봐야해'

'내가 할 수 없는 파도라면 망했다 하고 웅크리고

기다려야 해 지나가길 말이야 하하하'

같이 가는 친구인 눈이 파란 금발의 여린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서 도와줘서일까

딸은 물을 마셔도 마냥 재밌었다고 신이 났다


'서핑이 재밌는 거였구나 좋은걸 배웠네'

내 불안이 커지지 않게

책을 읽고 개를 산책 시키고 길을 걷고 글을 쓴다

나를 잘 다스려야 가족들을 잘 보듬을 수 있기에

소박해도 바스락 거리는 것들에 집중해서

작고 흔해도 그저 생명에 감탄하며

나도 당신도 무척 소중하다고

토닥일 수 있기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