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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메로나 May 29. 2020

남편을 안았다

아, 아침인가

안방문이 닫혀있지 않은걸보니 아직 새벽이구나


거실에서 자는 남편은 아이들이 깨기전 출근준비 때문에 시끄러울까봐 조용히 매일 문을 닫곤한다

새벽 6시 반 창으로 언뜻 느껴지는 산뜻한 하늘을보니 잠이 달아나버렸다


때마침 부스스일어나 눈을 이십프로만 뜬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침대를 넓게 차지하고 자는 25개월 상전덕에 침대 발끝쪽에 붙어있는채로

바쁠텐데 어쩐일인지 스르르 들어와서 등을 돌린채로 내 팔에 눕는다


그렇다, 남편을 안았다

그보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아니다


흰색 민소매 러닝셔츠와 내가 엊그제 사준 8천원짜리 잠옷바지를 입고 등을 돌린 남자를 심심했기 때문에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귀였다 귀가 크고 시원한게 좋다던데 그것은 옹졸할정도로 작았다 아버님은 부처님귀고 우리아이들도 귀가 잘 생겼는데 신기할 노릇이다 마치 라면에 넣은 작은 전복같았다 그래서 속이 좁았구나하고 생각하니 그간의 미움이 어느정도 해소되는듯 했다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등을 쓰다듬고 배를 쓰다듬었다 골든 리트리버가 누워있는듯 순하게 가만히 그러고 있는걸 보니 좋은 모양이다

연애를 6년이나 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눌 시간도 앗아가 버렸다

물론 티비에는 육아도 결혼생활도 요리도

300프로 충실해보이는 신기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켜야 하는 것이 생겨날수록 서로 단호해

지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곤 했다


다시 남편을 보았다

옆에 누웠는데 무얼 해야할지 조금 고민했다

둥실둥실 살들을 팔이고 배고 주무르는 재미를 느끼던 그때. 꼬집! 오른쪽 팔을 잽싸게 뒤로 뻗어 내 옆구리에 공격이 들어왔다 반격으로 날 꼬집을줄 몰라서 헉하고 놀란 나는 새벽부터 왜이래하고 귀에 속삭였다 더이상 공격한다면 애들이 깰것이다 그럼 전쟁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남편은 팔을 거두고 다시 리트리버처럼 누운채로 평화롭게 있었다 아 내가 지나쳤구나 주무르기는 끝내야만했다

어라 슬며시 웃는듯한건 내 착각인가  나름의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지 기분이 좋았다


출근은 해야 하니 끄응 기지개와 함께 일어난다  뒷모습을 보니 러닝셔츠에 작은 구멍이 2개나 나있다 잘 다녀와하며 소리 안나게 문을 닫는 남편을 배웅한다 아침부터 고단할텐데 군말없이 조용히 살금살금 나가는 그가 고맙다 옷장안의 러닝셔츠를 싹 가져와 아침부터 검사를 한다 싹 바꿔줘야지


이게 사랑이다

그의 사랑은 무거운 몸을 끌고 출근하면서도

살금살금 나가는 것이고

나의 사랑은 러닝셔츠를 바꿔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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