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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y Choi Mar 15. 2017

빨강 목도리의 그녀

<혜화, 동>

(2014년 Daum Magazine: Fashion inMovie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손이 시리고 입김이호호 나올 때면 나는 으레 <혜화, 동>의 포스터를 떠올린다. 최근 <용의자>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혜화역의 유다인과 <응답하라 1994>의 히어로 중 하나인 유연석 주연의 이 영화는, 춥다. 지치도록 뜨거웠던 첫사랑의 상처를 겨우 잊고 살아가던 중 마주친 진실은 혜화가 그토록 잊고 싶었던, 묻어 두었던 돌덩이를 끄집어내고 만다. 이 영화는 이제 막 꽃 피려 하는 스물네 살 청춘의 무거운 이야기이다.


대림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라이언 맥긴리의 <청춘> 전을 보다가 나는 창가의 자리에 주저앉아 이 영화에 대한 몇 줄의 이야기를 적어내려 갔다. 청춘이란 것은 언제나, 그 누구에게나 뜨겁고 혼란스럽고 가슴 저린 무엇 이리라. 우리들은 첫사랑을 잃었고, 술 취해 여관방에 들어갔고, 강의를 땡땡이치고 잔디밭에서 잠이 들었고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아마, 혜화도 그러했으리라.  



공기가 얼어붙는 듯 차가운 겨울, 혜화의 빨강 목도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영화의 포스터에서 보이듯이 그녀는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의 소녀이다. 조그 많고 하얀 그녀를 감싸주려 애쓰는 듯한 빨강 니트 목도리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혜화의 목도리를 핑계 삼아 오늘은 겨울이면 손이 가는 스웨터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 한다. 스웨터를 고를 때는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섬유의 텍스처가 피부에 그대로 전해지는 아이템인 만큼, 자신이 양, 염소 등의 동물의 섬유로 만들어지는 울을 입을 수 있는지 아닌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면 소재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땀 흡수와 통풍이 잘 되어 사계절 아이템으로 쓰이나 겨울에는 단연 울과 캐시미어로 만든 스웨터를 찾게 된다. 울 성분으로 만든 스웨터를 입으면 간지럽고 까칠까칠함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굳이 입으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권장한다. 몸에 안 맞는 음식이 있듯이 옷도 몸이 좋아하는 성분이 있는 것뿐이다. 물론 보온성으로 따지자면 원사 중 울을 최고로 치니, 따뜻한 스웨터를 원한다면 울 블렌드를 여러 가지 입어본 후 자신이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성분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캐시미어도 마찬가지로, 울과 다르지 않다. 울보다 훨씬 가볍고 보드라운 감촉이기는 하나 울을 못 입는 사람은 캐시미어도 맞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꼭 테스트해 볼 것.


스웨터는 기본적으로 원사를 가지고 실을 만들어 짜는 것으로, 강한 염색을 할수록 원사의 텍스처를 잃어버리기 쉽다. 특히 실크나 캐시미어 등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이 포인트인 경우, 절대적으로 밝은 컬러를 추천한다. 밝은 회색 톤까지는 괜찮지만 블랙을 내기 위해서는 공정과정에서 본래의 촉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한 겨울 코트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컬러가 블랙이니 만큼, 안에는 아이보리, 카키, 라이트 그레이 정도의 무난하고 밝은 컬러를 입는 것도 겨울철 무거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일 것이다. 



겨울 코트를 입는 시기가 되면 나를 괴롭히는 분들이 있다. 재킷과 코트 뒷자락에 있는 X- 스티치를 그냥 달고 다니시는 분들이다. (스커트에도 있다.) 주머니의 입구와 뒷 자락의 핸드 스티치를 풀어야 그 옷이 제 기능을 다하게 되니 구매 후 착용 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재킷이나 코트, 모직 목도리에서 보기 쉬운 handmade 레이블도 원래는 착용 전에 떼고 입는 것으로 만들어졌으나 뭐 굳이 붙이고 다니고 싶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프랑스 뚜르 아시안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쓴 <혜화, 동>을 들어본 적 없는 분들을 위해 유희경 시인의 짧은 시를 드린다. 시인이 묘사한 청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날 이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붉은 노트]

유희경

멈출 수 없었던, 의지와 맹목과

다르게 느껴지는 그 어떤 시기,

그, 청춘이라 불렸던 눈 멀고 환한,

그토록 새빨간 거짓말을 새파란색으로 적어가는

순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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