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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Mar 13. 2022

아빠, 저 정말 많이 사랑받았어요

'서울여자가 제주여자'에게 보내는 네번째 편지 (아빠)

내가 제주에 갔던 어느 밤 네 차에서 엿듣던 통화가 기억난다. 너의 마지막 말은 "나도 사랑해"였어. 내가 누구랑 통화하냐 했을 때? 넌 아빠라 했지. 으잉??? 통화의 주인공이 아빠라는 것이 너무 따뜻하면서도 신기했다. 우리 나이에 아직 아빠랑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너였구나? (지금 네가 사랑한단 말을 아빠에게 할 때냐! 남자 친구에게 해야지란 잔소리를 그때도 했던가 안했던가? 히히)


너와 나의 공통점 하나를 찾는다면 아빠와 사이가 좋다는 거였어. 의외로 아빠랑 친한 딸은 많지 않더라. 아빠를 좋아하는 딸도 드물었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1초도 고민 없이 "아빠"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였어.라고 썼는데 니 편지에 똑같은 질문과 답이 있어서 신기했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아빠를 참 좋아했어. 엄마는 나보고 항상 아빠 편이라고 눈을 흘기곤 하셨지만... 우리 아빠 어린 내 눈에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거든.

아빠의 이 사진을 볼때마다 비틀즈가 생각나


어린 시절 아빠는 우리 가족을 태우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어디든 다니셨어. 기억나는 모습은 우리를 향해 삼각대를 세우거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 네비 따위는 없던 그 시절 전국 고속도로 지도를 펴고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차에서는 송창식, 해바라기, 정태춘 박은옥, 사이먼 앤 가펑클 같은 음악이 흘렀고 앞자리에 앉은 엄마는 아빠에게 졸지 말라며 오징어를 입에 물려주셨지, 나와 내 동생은 뒷좌석에서 다리를 서로 지그재그로 쫙 펴고 마주 보며 전국을 누비고 다녔어. 쓰고 보니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네.


아빠는 문학시간에 '메밀꽃 필 무렵"을 배웠던 내가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이 궁금하다는 말에, 나를 태우고 봉평으로 달려서 이게 메밀꽃이야 하고 보여 준 사람이었어.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땐 저녁을 사주시면서 "앞으로는 여성의 시대가 올 것이다. 오래전에는 전쟁도 치르고 하며 남성의 힘이 필요한 시대였다면 이젠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올 거다. 넌 그런 시대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 뭐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해주셨어. 그리고 참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젓가락질하는 법부터, 지금까지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수영도, 늘 못해서 낑낑거리던 수학도 과학도 다 아빠에게 배웠어. 약속 시간엔 항상 10분은 먼저 가 있으라거나, 업무를 받으면 늘 메모해두라는 삶의 지혜도 아빠에게 얻었다. 재수를 할 때도 1년 내내 새벽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시고, 돌아오면 역에서 기다려 준 사람도 아빠였어. 대학에 갔을 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돈 1~2만 원은 지니고 다니라며 다이어리에 곱게 접어 넣어주던 사람. 남자친구와 헤어진 딸에게 다정한 문자로 위로해주시고, 서른이 한참 넘어 시집 못 간다고 엄마에게 구박받고 방에서 징징 거릴 때면 내 방에 오셔서 평생 이렇게 아빠랑 살아도 좋다고 속닥속닥 위로해주셨던 우리 아빠. 난 아빠의 칭찬과 위로를 먹으며 컸다.


적고 보니 우리 아빠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을 텐데... 게다가 늦둥이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셔서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지도 못했다 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식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심어주실 수 있었을까?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하고 낮밤이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 딸에게 매일 남겨주시던 카톡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다 큰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적어주신 것들


하지만 아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내가 대학에 진학하며 나름 어른의 꼬리표를 달며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 당시 아빠는 삼성전자에 다니셨는데... 우리 가족은 말은 안 해도 그 사실을 은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퇴사를 하시겠단 거야. 사실 그동안 조직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고 그래서 연구소로 옮기고 가족들을 위해 버텼지만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하셨어.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의사가 되고 싶었고, 그만큼 공부도 잘하셨지만 큰 아빠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서 컴퓨터를 전공하셨다고 했어.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당시엔 정말 낮밤 없이 일하던 시대였는데... 가족을 위해 참으셨었나 봐. 앞으론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원하는 삶을 살겠노라 선포하신 아빠는 주식을 시작하셨고 지금까지도 난 주식한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신 아빠를 보게 되었다.


아빠 혼자 방에서 머무시는 시간이 많아졌고, 식탁 위 대화는 점점 사라졌어. 돈이 필요하시다며 우리가 함께 타던 차도, 한그루 한그루 나무를 심으며 엄마와 노후를 꿈꿨던 시골 땅도 팔아 버리셨지. 엄마는 많이 우셨어. 돈에 있어 늘 관대하고 여유롭던 아빠셨는데, 멋있게 쓸 줄 아는 분이셨는데, 돈에 쫓기며 조급하고 궁해 보이셨다. 내가 알 던 우리 아빠가 맞나? 하는 순간들이 잦아졌어. 그렇게 아빠에게 실망도 했다. 그런 아빠를 부정도 했다. 또 머리 좀 컸다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며 포기하고 어느 정도는 인정하며 지금까지 온 것 같아.


정말 존경했는데, 내 눈엔 늘 너무 멋졌는데, 내 친구들에게도 항상 "넌 꿈이 뭐니?"라고 묻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는데, 예전엔 이런 모습의 아빠가 아니었는데, 늘 나는 과거의 아빠를 그리워했던 것 같아. 게다가 나이가 드시니 왜 이리 볼품없이 뵈는지 흰머리에, 이렇게 아빠 키가 작았나?싶은 생각도 들고 내게 뭐든 알려주시던 아빠는 이제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빠가 되어버리셨다. 난 그걸 귀찮아하는 늙은 딸이 되었고 말이야. 우리 정말 비슷하네. 여하튼 할아버지가 된 아빠를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어. (나도 늙었으면서... 왜? ㅠ_ㅠ)


그 사이 나도 내 가정을 꾸렸고 딸을 데리고 엄마 아빠 집에 갔던 어느 날이었다. 내 딸 지온이와 풍선을 부는 아빠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귀가 쫑긋해졌다. 머리끝부터 하나씩 세포가 톡톡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지온이를 안고 함께 풍선에 바람을 넣으며 말하셨어 "지온이 잘해요~~ 이번에는 크게 해 보자. 와! 크다~~ 우리 지온이 잘해요" 아빠의 목소리였어. 내가 어린 시절에 듣던 아빠 목소리 말이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어. "지현이 잘해요, 우리 지현이 잘해요." 하던 아빠 목소리가 똑같았어. 울컥했다. 너무 오랜만에 과거의 아빠와 만난 기분이었어. 너무 보고 싶던 나의 아빠, 너무 그럽 던 내가 사랑했던 아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았어. 변함없으셨단 것을.


내 딸과 놀아주시는 아빠를 볼 때, 난 다시 어린 내가 되어 아빠와 조우한다. 그래 우리 아빠 저런 사람이었지. 어리니깐 안된다 안 하시고, 넌 아직 못해라고 한 적 없던 아빠였지. 맞아 저렇게 고무줄을 이어 장난감을 만드셨지 뭐든 쉽게 뚝딱 잘 만드셨지. 내가 아빠의 저런 모습 참 좋아했지. 그런 아빠 모습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훗날 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을 거라는 것을. 아빠가 내 곁을 떠나면 너무 그리워할 것임을 깨달았어.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인지 너무 늦은 것인지... 그리고 네 말대로 부모가 되고 알게 된 사실도 하나 있다. 부모도 자식이 많이 그리울 거란 거야. 훗날 내가 아빠를 그리워하듯, 아빠도 내가 보고 싶을 것이고, 그리워하실 것임을 난 딸을 낳고 알게 되었어.


난 너처럼 애살맞게 "아빠 사랑해"라는 딸을 못되지만 아빠에게 편지를 한 통 쓴다면 이 말을 꼭 쓰고 싶어 "아빠, 제 아빠로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저 정말 아빠에게 사랑 많이 받았어요. 아빠 사랑받으면서 너무 많이 행복했었어요"


나도 내 딸에게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된 지온이가 난 엄마에게 사랑 많이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나이 들어서도 변함없을 수 있을까? 젊고 돈 많고 유능한 아빠만 내 아빠였을까? 아빠는 변함없이 열심히 인생을 살았을 뿐인데 내가 그 모습이 맘에 안 든다며 멀어진 것은 아닐까? 참 못 된 딸에게 과분했던 나의 아빠. 엄마도 늘 말씀하셨지. 너희는 아빠가 어떤 모습이라도 원망하면 안 된다. 아빠는 너희에겐 아빠가 할 최선을 다했다고.... 최선을 다한 아빠의 곁에 지금 너무 쓸쓸한 건 아닌가.


로사야, 너에게 이 편지를 쓰다 보니 난 기록해두고 싶은 아빠의 모습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했던 아빠 모습, 또 우리가 함께 한 소중했던 기억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다 적어두고 싶다. 이럴 땐 기록해두면 된다는 것도 아빠에게 배웠는데... 그런 아빠가 더 멀어지기 전에 우리 조금만 더 아빠에게 다가가 보자. 우리는 사랑 많이 받은 아빠 딸 이니깐 :)


제주 여자의 편지도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rosainjeju/9




*서울여자 제주여자 편지 프로젝트

제주에 살고있는 친구와 (서울여자 제주여자) 편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동네 10분거리 아파트에 살던 친구가 홀로 제주로 이주했고 그렇게 9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여전히 회사에 다니며 워킹맘으로 살고있는 서울여자

홀로 제주로 떠나, 집과 직장을 구했고 지금은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있는 제주여자

비슷했으나 또 많이 달라진 두 친구가 서로 편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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