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lo de Santa Rosa de Viterbo, @Plaza mariano de las casas
멕시코의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어디에나 광장이 있는 도시의 구조는 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도시 설계, 공간과 배치가 사고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해보기 전엔 몰랐다. 내가 갈수록 게으른 여행자가 되어간 것은 광장에서의 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남미를 여행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광장에 하릴없이 앉아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
Querétaro(께레따로)에서의 시간들도 그랬다. 스스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자고, 느릿느릿 나갈 준비를 하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시간에 밖으로 나와 산뜻하게 걷다가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는 것. 내가 께레따로를 특별히 좋아한 이유 중 하나는 포근하고 평화로운 광장들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곳의 광장, 공원, 정원들의 이름과 위치가 생생하다.
@Jardín Zenea
처음 께레따로에 갔을 때 Jardín Zenea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묵었다. Jardín Zenea는 께레따로의 모든 것에서 가까이 있는 위치였고, 이곳에서 추억이 가장 많아서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장이 되었다. 께레따로 주는 과나후아또 주의 바로 옆이어서 그런지 과나후아또의 광장 스타일과 닮았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고, 과나후아또(Guanajuato)와 뿌에블라(Puebla)를 섞어놓은 것 같은 도시이기도 했다.
@Jardín Zenea
께레따로는 또한 내가 열병에서 막 회복해 바깥세상으로 나왔을 때 만난 도시이기도 하다. 앓은 시간이 길었기에 광장에 평온하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용한 감격에 젖어들었다. 광장에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툭 걸터앉아 있었다. 말없이 앉아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무중력의 세계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시간도 잊고 풍경도 잊고, 머릿속에 지나는 생각들을 멍하니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생각들도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
@Jardín Zenea
광장은 세상의 모든 생각을 사라지게 하는 곳임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광장에서는 친구를 만들 수 있었고, 광장에서는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계획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광장으로 귀결되었다. 시간의 공백을 잠시도 가만 두지 않으려 하는 우리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결국엔 다 이루어진다. 광장은 그래서,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곳이자 세상과 만나 외로움을 털어버릴 수 있는 곳이다. 광장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다.
@Jardín Guerrero
@Jardín Guerrero
@Plaza de la Corregidora
광장은 지극히 일상적인 곳이기도 하다. 한 번은 께레따로의 친구 지오반니에게 약간 화가 나 있었다. 며칠 뒤 오후, 잠시 광장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우연히 광장에서 지오를 또 만났다. 우리는 반가움에 인사하며 "오늘은 뭐 했어?" 하며 일상 대화를 이어나갔다. 화가 났던 것은 언제였냐는 듯 이미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늘 싸워도 내일 또 거실에서 만나는 가족 같았다. 동네 놀이터에 가면 늘 있는 친구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이광장 저광장을 건너 다니며 놀았다.
광장은 그런 곳이다. 지오를 기다렸던 곳, 지오가 나를 화나게 했던 곳, 지오를 재회했던 곳, 함께 대화를 나누며 산책을 했던 곳ㅡ 광장은 소소한 일상이 크고 작은 동심원처럼 피어나는 곳이다. 오늘 헤어지고 내일 또 만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곳. 우리의 삶에는 그런 놀이터가 있는가?
@Plaza de la Constitución
@Plaza de la Constitución
나는 모든 광장들이 빛에 휩싸인 채 나를 격렬히 맞아주던 마지막 밤을 잊지 못한다. 그날 밤 Plaza de la Constitución의 한쪽에서는 광대(Payaso)들을 둘러앉은 사람들이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바로 옆에선 맞잡는 손들로 커다란 원을 이룬 사람들이 아름다운 화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전율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합창이었다. 몇 블록 옆 Jardín Guerrero로 넘어가니 첼로 소리가 들려왔고 멋지게 차려입은 악단이 클래식 선율로 밤을 우아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Jardín Zenea에서는 소설 속 자유의 나라가 펼쳐진 듯 저마다 짝지어 춤에 취해 있었다. 바로 옆쪽 빈 도로에선 한 남자가 아찔한 자전거 묘기를 선보이며 박수를 받고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 각각 다른 광대들의 공연들이 블록마다 왁자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한참을 즐기다 Plaza de Armas 쪽으로 걸어가니 도착하기도 전에 마이크에서 상기된 축제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무대에서 사방으로 화려한 빛줄기가 팡팡 터지고 음악 리듬은 심장박동처럼 쿵쾅거리고 광장에는 온통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다.
@Jardín Zenea
@Jardín Zenea 옆
@Plaza de Armas
아아, 어떻게 잊을까, 끝없이 펼쳐지던 광장의 환대를, 광장의 환희를, 광장의 에너지를. 광장을, 광장을, 광장을, 희열 속에서 걷고 또 걸었다. 마치 뫼비우스 띠 위를 걷는 듯했다. 광장에서의 시간은 그림자처럼 길어지다 순식간에 압축되었다.
우리에겐 광장이 있는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마음 한켠에 작은 광장 하나 지니고 살아야겠다. 지칠 때면 그 광장으로 들어가 속없이 편안하게 누워 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