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우리 회사는 처음이지?"
엘사의 첫 출근
엘사, 그녀는 겨울왕국의 깜찍한 공주처럼 내 방문을 두드렸다. 엘사를 만난 곳은 낭만이 가득한 도시, 과나후아또의 한 호스텔이었다.
도미토리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어느 저녁이었다. 한 여행자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와 내 옆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자기를 '엘사'라고 소개한 그녀는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 왔다.
"너 스페인어 할 줄 아네?"
"조금."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지금부터 너의 스페인어 선생님이 되어줄게."
엘사는 내 폰에 몇 가지 표현을 써 주었다. 우리는 어느새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서 서로의 사진첩을 구경하고 있었다. 역시 멕시코는 슈퍼 외향인들과 일반 외향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그런 살가움이 나쁘지 않았다. 이후 도미토리에 두 명이 더 왔다. 씻고 나오니 엘사는 그들과도 '절친'이 되어 있었다.
엘사의 고향은 멕시코시티지만, '과나후아또'에 살아보고 싶어서 이곳에 직장을 구했다고 했다. 호스텔에 지내며 방을 알아볼 예정이며, 내일이 첫 출근이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엘사의 첫 출근에 초조한 건 오히려 나였다. 그녀는 지각이라고 말하면서도 여행자들과의 수다를 끝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엘사, 늦었다며! 오늘 첫 출근이라며?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엘사는 도미토리의 모든 여행자들과 여유롭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마침내(?) 회사에 갔다.
...아니, 간 줄 알았다. 그녀는 5분 만에 태연하게 돌아오더니, 날씨가 춥다며 느릿느릿 머플러를 찾아 정성스럽게 매무새를 다듬고는, 다시 한번 모두와 작별 인사를 시작(?)했다. 아, 역시 여기선 나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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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우리 회사는 처음이지?
엘사를 출근시키고(?) 나도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아침 공기에 절로 커피가 간절해져 우니온 정원 옆의 까페떼리아로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페소, 1800원 정도였다. 모닝커피를 즐기며 와이파이에 연결해보니 엘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내가 있는 카페떼리아가 자기 회사 바로 옆 건물이라는 것이었다! 엘사는 이런 놀라운 우연을 놓칠 수 없다며 잠깐 보자고 했고, 자기 회사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엘사, 그 회사 너도 오늘 처음..이지 않니?
엘사는 과나후아또의 중심에 있는 한 고급 호텔의 어시스턴트 매니저였다. (물론 오늘부터.) 그녀가 스페인어 선생님이 되어주겠다고 한 것도, 실제로 외국어 능력자였기 때문이었다. 엘사를 따라 호텔의 시설과 곳곳에 설치된 예술 작품, 사무실까지 둘러본 뒤 루프탑에 올라갔다. 도시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었다. 노란 과나후아또 성당과 삐삘라 기념탑도 한눈에 보였다. 나는 호텔을 구경하는 동안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직장 동료들도 '신입' 엘사의 기행(?)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외국인 친구인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었던 것이다. 이런 게 가능한 세상이라니…… 혹시 나중에 따로 불려가는 건 아니겠지?
우연히 엘사를 만나 생각지도 못한 각도의 과나후아또를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암묵적으로 '금지'한 걸까? 우리도 매사에 좀 더 유연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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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과나후아또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엘사와 인사를 하고 다른 도시로 떠났다. 그날 밤, 엘사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왔다. 내가 호스텔에 티를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아차! 3개로 돌려 입고 있었는데 그걸 깜빡하다니! 나는 그냥 버려도 된다고 했지만 엘사는 티를 꼭 보관하고 있겠다고 했다. 정말로 그럴 필요가 없어서 말렸지만 엘사는 이렇게 말했다.
No te preocupes. Es una excusa para verte de nuevo.
(걱정하지 마. 이건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한 변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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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한 달 뒤 엘사에게서 또 한 장의 사진이 왔다.
Compré para ser gemelitas, para estar iguales cuando nos veamos. ¡Tenemos mucho por hacer!
(다음에 만나면 쌍둥이룩 입으려고 이 옷을 샀어. 만나면 같이 할 거 진짜 많아!)
어디서 저렇게 똑같은 옷을 산 건지, 내가 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옷으로 귀여운 핑계를 만드는 친구, 엘사. 나도 그녀에게서 배운 멕시코 슬랭으로 화답해 주었다.
¡Padrísimo! (완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