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일 잘 생겼어?"
에스띠뿌도!(¡Estípudo!)
여행 중에 약 3주간 자연 보존 활동 및 문화 교류를 하는 멕시코 워크 캠프에 참여한 적 있다. 그때 세르단(Serdán)이라는 마을의 학교에서 생활하며 알게 된 사람들을 소개한다!
¡Sí, güey!
말끝마다 Güey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붙이던 사람들, 이들은 말장난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멕시코 사람들이었다. 내 귀에 '웨이'라고 들리던 이 말은, 알고 보니 그냥 친구를 부를 때 쓰는 짓궂은 은어 같은 거였다. 영어로 치면 Dude 정도?
게다가 여기저기서 자꾸 'Estípudo(에스띠뿌도)'라고 외쳐댔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내가 알고 있는 그 단어가 틀린 줄 알았다. 원래 단어는 'Estúpido(에스뚜삐도)'인데 '바보 같은, 멍청한(=stupid)'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치면 바보를 보바로, 멍청이를 청멍이로 말한 것과 비슷하다. "에-스-띠!뿌!도!"하고 한음 한음 내뱉던 뻔뻔스러운 얼굴, 그것은 누군가를 골탕 먹일 때의 얼굴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았다. 그걸 알고 난 뒤부터는 이들이 하는 말의 절반 이상이 장난이라는 것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
.
잘생긴(?) '훌리오'
첫 만남은 강렬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캠프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던 날, 우리를 데리러 온 안내자들은 다짜고짜 "누가 제일 잘 생겼냐"며 딱 한 명만 골라야 한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아니 이거 초면인데, 고르는 것도 웃기고 버티는 것도 웃기고, 이것도 시험의 일종인가? 그보다, 안내자들이 이래도 되나?
시간을 끌수록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진에서 제일 왼쪽의 남자를 지목했더니, 그가 말 그대로 '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그의 이름은 훌리오(Julio)였다. 아, 뭔가 실수한 것 같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이들은 모두 '학교 선생님'이었다. 음…….
.
.
대장 '헤루'
우리의 카리스마 리더, 헤루살렌(Jerusalén). 이 모든 장난꾸러기 선생님들을 단번에 제어할 수 있는 똑쟁이 대장이다. 마치 선생님들의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축제 전날 우리를 이끌고 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예쁜 옷과 장신구들을 골라준 사람도 바로 그녀다. 덕분에 멕시코 최대 축제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Independencia día)에 우리도 남들 못지않게 알록달록하게 치장하고 축제를 즐겼다.
하지만 사실은 헤루도 대책 없는 장난꾸러기.(...속았다.) 헤루는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에게 훌리오의 사진을 '멕시코 대표 미남 사진'이라고 보내보라며 부추겼다. 내가 첫 만남 때 훌리오를 잘 생긴 사람으로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어!) 더구나 나를 '훌리아'라고 부르며 놀렸을 때는 억울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스페인어에서 남성 명사는 o로 끝나고 여성 명사는 a로 끝나는데, 훌리오(Julio)의 이름을 바꿔 훌리아(Julia)라고 하는 거였다. 이들의 말장난에 적응이 끝난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러나 나도 나중에는 'Trenza'라는 화려한 머리띠를 두른 훌리오의 사진을 보면서 대놓고 잘생겼다고 낄낄대며 놀렸다.
.
.
댄서 '차꼰'
멕시코의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과정에 댄스가 있었다. 마리아치의 음악만큼이나 그들의 삶에 녹아 있는 것이 댄스였다. 하지만 내 삶에서 댄스란, 나와 가장 관련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천생 몸치이자 주입식 교육의 산 증거, 하여 댄스 수업에만은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차꼰(Chacon)은 댄스 선생님이었다. 사진의 가장 오른쪽에서 흥에 취해 있는 바로 저분이다. 댄스 수업에 적응을 못 하는 건 나와 일본에서 온 참여자, 그러니까 동양인 둘 뿐이었다. 심지어 외국인인 내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몇몇 부끄럼쟁이 멕시코 친구들마저, 댄스 수업만 되면 열정을 불살랐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음악만 있으면 몸을 흔들었고, 옆에 누가 있든 함께 즐길 줄 알았다. 그러니 차꼰, 네가 내 맘 어떻게 아냐고. 흑. 그는 툭하면 "Coreana!(한국인!)" 하면서 내 요상하게 뻣뻣한 동작을 지적했고, 자꾸 앞으로 불러내서 짝을 붙여주었다. 아, 수치스러운 순간들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자꾸 뒤에 숨어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나?
축제 때 창이 넓은 모자와 연미복을 차려입고 나타나 춤을 추던 차꼰의 모습은 더없이 멋지고 화려했다. 이거, 첫 만남 때 그를 지목했어야 했나. 그러나 그의 수업 시간은 내내 도망가고만 싶었다는…… 댄스 조기 교육을 시켜주지 않은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원망스럽다!
.
.
베이비 '아기'
스페인어가 모국어가 아닌 참여자들이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때면, 친절하게 영어로 통역해 주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진 속 가운데 있는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살피며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체크하는, 알고 보니 가장 사려 깊은 선생님이었다. 장난기 100%로 각인된 첫인상 때문인지, 꽤 충격(?)이었다. 그는 부끄러워하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었고, 말이 막힐 때마다 매끄럽게 이끌어 주었다. 어쩌면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 몇 개의 단어만으로 뜻을 전달하고자 안간힘을 쓸 때, 옹알이하는 아기를 이해하려는 마음이라야 그 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영어 시간에 느낀 게 있다면, 멕시코 아이들도 우리만큼이나 영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라틴문자를 공유하기도 하고, 비슷하게 생긴 단어도 많아서 그들에게 영어는 무척 쉬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면 그들은 빽! 하며 손사래를 친다. 멕시코 국제공항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을 만큼, 그들에게도 영어는 어렵고 생소한 타국의 언어였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우리에게 모르는 부분을 물어봤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그들의 숙제를 해주고 있었다.(...)
아, 이제 말해야겠다. 그의 이름은 아구스띤(Agustin)이다. 줄여서 아기(Agui)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건 한국말로 진짜 '아기'라는 뜻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의 동료들은 당연히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마음으로 bebé([베베]:아기)를 놀렸다.
아구스띤에서 아기가 되어버린, 우리 귀여운 아기! 여전히 활기찬 모습으로 학생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지내고 있겠지?
.
.
일하러 갑시다!
¡Vámonos a trabajar!
이래 봬도 일할 때는 진지한 그들이다. 학생들과 그토록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꾸밈없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학교 축제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축제란 어떤 것인지 절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내게 멕시코다운 유쾌함과 따뜻함을 행동으로 가르쳐 준 진정한 '세르단의 마에스트로'들!(Maestro:선생님) 그들은 오늘도 함께 모여 쓸데없는 장난을 치며 웃고 있겠지? 언젠가 다시 보는 날, 모든 걸 잊고 그들과 뛰어 놀리라. 체면 따위 내려놓고, 뻔뻔하게 'Estípudo(에스띠뿌도)'를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