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술을 마셨다

두 번째 이야기(2011)

by 세라

#2-1. 얹혀산다는 건


나의 두 번째 거처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이모집이었다. 인턴 합격 후 출근 일정이 빠듯해 우선 임시로 이모집에 묵기로 한 것. 고시원 방에서 나와 남쪽 끝의 고향 집에서 두어 달 머무른 뒤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해야만 했던, 생각해보니 그 뒤로도 두 달 뒤 이사를, 네 달 뒤 또 이사를 해야 했던, 나는 차라리 여행자에 가까웠다.


사촌 동생들은 나 때문에 방 하나를 비우고 둘이 같이 방을 써야 했다. 그때는 깊이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리 친척이라도 집에 객식구를 들이는 게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일인가를. 이모네 가족들은 모두 나를 많이 배려해 주었고, 나도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며 지냈다지만 그건 또 얼마나 허술하고 서툴렀을지.


이런 날도 있었다: 회식을 하고 온다. 술을 마셨지만 티도 나지 않을 정도임. 민폐 끼치지 않도록 최대한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조용히 씻고 살금살금 방에 들어가 잔다, 고 생각하지만, 다음날 아침 초중딩 사촌 동생들이 밥을 먹다가 이모에게 버젓이 말하고 있다. "엄마, 누나 어제 완전 술 취했던데?"


삐용 삐용, 나는 어린 동생들에게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불건전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얹혀산다는 건 왠지 예쁜 박스에 잘못 분류된 불량감자가 된 느낌 같은 것.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도 감자는 감자지, 고구마가 될 수 없음. 그리고 어쩌면 나의 독립을 부추긴 건 음주의 자유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었으리라.



#2-2. 아멘


이모네는 전형적인 크리스천 집안이었다. 참고로 할머니는 불교, 엄마는 무교, 이모는 교회, 나는? 나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믿지 않다가, 최근에는 오히려 다 믿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 풍파에 데이고 베이며 세상 모든 신들을 원망하다 못해 극단적으로 겸손해진 케이스다.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동네 산신이든 도와만 달란 말이다!)


아무튼 당시 저녁마다 돌아오는 기도 시간에 참여하는 건 이모집의 어떤 룰 같은 것이었다. 매일 동그랗게 마주 앉아 돌아가면서 성경을 한 줄씩 읽고, 손을 잡고 기도를 올렸다. 이모부가 해 주셨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천지 창조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면서 이런 이야기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테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다 순하게 들려서 걸림 없이 믿어지기도 한다는 거다. 오, 그렇다면 나는 정말 탁하고 탁하구나.


이렇게 탁해 빠진 마음으로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은 채 나는 매일 저녁 기도를 함께 했다. 지나고 보면 그래도 그 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을 빌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매일 밤 무언가에 간절해져 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 어느 완고한 세계로부터 배척받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멘.



#2-3. 이모의 눈물


나는 독립하기 위해 고시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보증금이 없으니 고시원에 들어가는 것 외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멍만 한 방 크기에 비해 월세들은 아주 무시무시했다. 당시 직장 근처인 남부터미널역을 중심으로 알아보고 다녔는데, 위치가 괜찮고 그나마 깔끔한 곳은 한 달에 70만 원도 달라고 했다. 인턴 월급이 100만 원도 안됐기 때문에 패스…… 패스, 또 패스……. 결국 물티슈 두 세 장만으로도 금방 다 닦을 수 있는 40만 원짜리 방을 찾았는데, 그 방은 바로 옆에 공용 세탁기가 있어서 다른 방보다 조금 더 싸다고 했다.


이사를 하기로 한 날, 박스 2개에 짐을 다 담아 이모 차에 싣고 고시원에 갔다. 이모와 함께 내 호실 방문을 연 순간이었다. 방을 본 이모는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는지, 마침내 고시원 방문을 꼭 닫고 나를 침대에 앉혔다. 이윽고 만감이 교차한 듯 오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냥 이모집에 가자"


좀 칙칙하고 비좁은 방이어도 나는 정말로 괜찮았는데, 서울살이 해 보겠다고 올라 온 스물넷 조카를 보는 이모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결국 다시 짐을 그대로 싣고 이모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한강에 잠시 차를 세우고 잠수교의 화려한 물줄기를 바라봤다. 거기서 이모집에서 조금 더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몇 가지 사항을 듣고, 그러겠다고 했다.


참으로 머쓱하게 다시 사촌 동생의 방으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안방으로 들어간 이모가 이모부와 이야기를 하다 꺽꺽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와 내가 잠시 멈추었던 한강 잠수교. 비가 오면 잠긴다고 잠수교라 부른다고 했지.
서울에서 서울이다 싶은 몇 곳 중 하나(반포 한강)
가난했지만 맥주를 사랑했던 그 시절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 이태원의 한 언덕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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