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망했어

퇴사 D-31

by 세라

-낮동안 이런저런 문장들을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글도 생각도 산만하다. 마음을 글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오늘은 실패로 돌아갔다. 삶이 몇몇 단어로만 치환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잡해라, 내 삶을 담보로 하는 한 글쓰기는 영원히 실패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쓰고 글을 끝내버리려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메모 조각들을 더 써 본다. 어젯밤에는 친구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친구가 말없이 안아주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버렸다.


-친구가 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 진짜 싫어. 돈이 약이지!"


-친구도 건물주의 갑질과 통제할 수 없는 우울감 때문에 힘들어한다. 여기저기 속 뒤집어지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저마다 가슴에 불이 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카페 마감 시간까지 같이 웃고 떠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각자의 밤은 더 길어지겠지.


-오늘은 휴가를 썼다. 책을 읽는데 자꾸 폰에 쓸데없는 광고 알람이 와서 흐름이 끊겼다. 무음으로 바꿔 놓았다. 오후에 나가 동네를 걸었는데 별거 아닌 이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한다는 게, 참 무력하고도 지긋지긋했다. 아니다, 쓰고 보니 틀렸다. 마음이 별거다. 인생이 별거다.


-어제와는 정반대의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다. 입사와 퇴사의 무한반복, 이거 도대체 언제까지…… 숨 막힌다. 모든 걸 청산하고 시골에 내려가 살까? (제주, 강릉, 통영, 공주 등 좋았던 곳…… 또 망상이겠지?)


-오늘은 얼굴이 특히 더 엉망진창이다. 일을 하면서 현대인의 병이란 병은 다 얻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토피인지 뭔지 모를 피부염이다. 게다가 이유 없이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느라 괴롭다. 이게 다 스트레스성이라는데, 스트레스를 안 받고 싶다고 안 받을 수도 없고, 붓고 따갑고 벗겨진 것은 내 마음인데, 몸까지 난리다. 저도 봐달라고, 저도 구해달라고. 나 지금 힘든데, 너라도 제발 얌전히 있어 주면 안 될까? 네가 나를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몸이 이 지경인데도 마음이 도무지 풀리지 않아 술을 마시고 싶었다. 다행히 잘 참고 평소 저녁처럼 차를 우려 마시고 있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의 지독한 자리 바꾸기 싸움. 과연 누가 이길까?


-내일 세상이 망해도 드립 커피는 내릴 수 있겠지, 중요한 건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망하지 않는 거니까. 내가 망하면 커피도, 글도 없을 테니…….


허수경 詩 「거짓말의 기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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