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보다 더한 동료평가제 실상

퇴사 D-28

by 세라

동료를 밟고 배신하고 쏴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 나는 2021년에 나온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현실, 특히 직장 생활의 축소판이자 간소화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현실은 어땠냐고? 더 잔인하고, 더 비인간적이었다. 드라마와 달리 연기도 아니고 죽을 수도 없기에 더 필사적이었다. 실제로 모 기업에서는 동료 평가 때문에 유서를 쓰고 자살한 사람도 나왔는데,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 버젓이 시행되고 있다. 나 또한 몇 번이나 이 주제로 글을 쓰려다 말았는데, 글을 쓰는 지금도 약간 심장이 떨린다. 이제 구조 조정도 당한 마당에 내가 겪은 인사 평가 제도에 대해 몇 자 써보고자 한다.


동료 평가 제도는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인사 고과 점수에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다. 수직 방향으로만 평가했던 방식을 다원화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동료들을 평가하고 평가받는 것이다.


동료 평가 기간이 되면 개인별로 암호화된 화면 입장 코드를 받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라는 안내 멘트와 함께. 로그인을 하고 들어가면 함께 일한 사람들의 이름이 쭉 뜬다. 그러면 한명한명 클릭해서 일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지, 협업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는지, 회사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전문성 계발에 끊임없이 노력하는지, 서로의 다름을 잘 인정하는 편인지, 그 외 도덕성, 친절성, 효율성 등등을 점수로 평가한다. 객관식 채점 다음에는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 대해 각각 최소 몇 자 이상 서술해야 넘어가는 주관식 페이지가 나온다. 그렇게 다 써서 최종 제출 버튼을 누르고 나면 수정할 수 없다.


취합 기간이 지나고 평가 결과가 뜨면 사람들이 나에 대해 평가한 평균 점수가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문서를 조회해볼 수 있다. 주관식 답변들 또한 필터 없이 좌르르 보여준다. 그런데 이 주관식 멘트는 입력한 말투나 오타까지 그대로 뜨기 때문에 팀원수가 적은 상황에서는 대략적인 유추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거 누가 쓴 거 같은데" 같은 눈치 게임이 시작되고, "앞에서는 같이 웃고 커피 마시는 동료가 뒤에서는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의심을 안 할 수 없게 된다. 서로 칭찬하고 응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공식적으로 물어뜯고 욕하는 분열의 장이 마련된 셈이다.


객관식도 마찬가지다. 비슷하게 느껴도 몇 점을 주는지는 주관적인 데다, 친한 사람이나 잘 보이고 싶은 상사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등 인기투표가 되기 십상이다. 평균 점수가 낮게 나온 몇몇 사람들은 나이 불문하고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게 눈에 보였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 경우, 그걸 대놓고 얘기하면서 아랫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업무상 차별을 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절대 익명성이 보장되지도 않았고,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았다. 공공연한 비밀은 온갖 루머를 만들어냈고 블라인드에는 "동료와 어색해졌다" "퇴사하고 싶다" "죽고 싶다" 등의 글이 올라오는 등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누굴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겉으로는 모두 속내를 감추고 매일 함께 일해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료 평가 결과지를 인쇄해서 부서장과 개별 면담까지 진행된다. 그 자리는 본인의 점수와 단점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였고, 차마 다 해명할 수도 없는 자리였다. "여러 사람들이 너를 이렇게 봤다면 이건 맞는 거다"라고 답을 정해놓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기 나온 네 단점들 변명하지 말고 다 고쳐" "네, 알겠습니다"로 요약할 수 있는 면담이었다. 게다가 계약직들은 재계약 시기가 되면 자질을 평가한답시고 결과지를 들추어 문제 삼곤 했다.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누가 누굴 자른 것인가?


생각해 보라, 만약 초등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신의 아이가 친구들에게서 장점과 단점을 평가받고 선생님이 불러 "네 친구들이 너를 이렇게 비난하고 있으니 고쳐라"라고 통보한다면? 나는 정말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도 사람이다. 어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나는 궁금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걸까? "밥 벌어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뭐" "매번 있는 일이야, 대충 넘어가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모두 가슴 한편에 칼자루를 숨기고 사는 것 같았다. 오징어 게임처럼 밀폐된 공간에 가두어 둔 뒤, 때가 되면 비수를 쥐어주고 서로를 찌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넌 모자라다고, 왜 그것밖에 안 되냐고, 안 되면 죽으라고, 아니면 죽이라고, 인격을 모독하고 매장시키는 것 같았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이 살벌한 경쟁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니 한 사람의 실수는 다른 이들의 기회였다. 누군가 삐끗하는 순간 벼랑 끝으로 확실히 밀어버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동료 평가 외의 인사 고과 제도에 대해서도 쓸 말이 많다. 공정하기는커녕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상처만 주고 일 안 하고 탱탱 놀다가 가는 윗사람을 승진시키기 위해 점수를 몰아주는 이상한 제도. 하지만 정보 유출을 우려해 여기까지만 쓰겠다.


한동안 나는 '파이팅 병'에 걸려 지냈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퇴근길 한강을 지날 때도 파이팅, 내일 출근하기 싫을 때도 파이팅, 끝없는 이 지옥 조금만 더 버티자 파이팅……. 번은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중얼거렸을 것이다. 발음했을 것이다, 파이팅 이라는 이 정체 불명의 음성 기호를. 나는 아직도 전쟁 같은 이 현실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스스로에게 틈틈이 파이팅 주술을 걸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밖에는. 그보다 더 자주 '파이팅은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러울 때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밖에는. 스님의 말씀은 산속에서만 맞았고 목사님의 설교는 교회에서만 맞았다. 현실은 현실이다. 파이팅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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