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보일러를 트는 시간

퇴사 D-23

by 세라

어느새 호수 표면의 살얼음이 깨어나는 계절이다. 나는 호수 앞에 서서 힘차게 맥동하는 물소리를 들었다. 겨우내 얼음 안에 갇혀있던 시간들이 톡톡 깨어나 황당할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따뜻해지는 게 마뜩잖다. 내가 다시 가두어져서라도 멈추게 하고픈 시간들이다.


하지만 아직은 춥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 차갑게 곱은 손으로 글을 쓰고 있다. 무엇에 대해 쓰려고 했지…… 그러다 부자연스러운 손가락 관절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오타를 자주 수정해야 해서 오른손이 분주하다. 그러고 보니 올겨울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다짐은 '추우면 보일러 틀기', 그리고 '따뜻한 물로도 설거지 해보기'였던 것 같다. 추운 단칸방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보일러를 틀 때마다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손이 따갑도록 시리고 피부 거죽이 벌게져도 기필코 손목을 털어가며 찬물로 설거지를 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의 결함이자 결핍이고 고집이며 강박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사방으로 바람이 통해 지독하게 추웠던 창고방에서 살 때 겨울철 실내온도는 6도쯤이었고, 햇살이 잘 들어와 좋아했던 큰 창문이 있던 탑층방에서는 실내온도가 3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집들은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치약이 딱딱해지고 하얀 입김이 나왔다. 출근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머리를 감을 때면 온몸이 와들와들,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진동해하루하루가 극기 훈련 같았다. 그러니 아무리 추워도 실내 온도가 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오피스텔 건물에서 처음 맞은 올겨울은 나에게 너무나 따뜻했다. 충분히 살 것 같은, 아니, 사치스러운 온도였다. 아무리 손이 곱고 발이 무감각해도, 보일러판에서 빛나는 두 자리 숫자를 보면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내 불행에 자신 있어 했던 건지도 모른다. 살아온 시간들은 너무 추웠고 따뜻해지고 싶은 욕구는 너무 컸기에, 어느 순간 그 괴물 같은 욕구가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을 묵인해 버린 것이다. 뱀처럼 똬리를 틀어버린 변질된 삶의 의지는 자기 자신에게 작은 온기도 허락하지 않았고, 외려 푹신한 위악 속에 몰아넣었다. 늘 그랬듯 고독을 견디길 바랐다. 백번천번 눈물을 닦고 신발끈을 다시 묶길 기대했다. 남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잔인한 행위를 나에게 지속했다. 그것을 앞으로 다가올 불행에 대비하는 본능적인 훈련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광폭한 설풍이 휘몰아치던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눈길에서 우산을 놓쳐버리고 휘청거리다 녹초가 된 채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제대로 보일러를 켰다. 그날 밤,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긴 일기를 썼다. 성인들은 자신을 고통의 극한으로 몰아넣어 깨달음을 얻었다는데, 나는 배부르고 등 따신 날에 그랬다. 그만큼 내게 위선은 어려웠고 위악은 쉬웠으니까. 울면서 글을 써내려 가는 동안 외면해 왔던 마음속의 오랜 뱀들을 마주하며, 내 떠돌이 인생에 한바탕 굿판을 벌인 밤이었다. 남들은 무람없이 해내는 일들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는 스스로를 춥고 초라하게 만드는 행위를 통해 일종의 만족감을 얻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어둠과 추위 속에서 지냈던 시절을 누군가에게 너무나 말하고 싶기 때문에, 무조건적이고 따뜻한 위로를 너무나 받고 싶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혹독한 추위 속에 나를 휘몰아 넣은 것일까.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괜찮다는 말로 얼버무리지 말고
아픈 데를 말하기

-작자 미상의 시 「오늘부터 1일」 中


이 시를 이어서 쓰고 또 썼다. 추우면 보일러 틀기. 손 시리면 따뜻한 물 사용하기. 아프면 주변에 알리기.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기. 가끔 얌체짓 해보기. 무례한 비난에는 윗사람이라도 대들어 보기.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말하지 않기. 누가 칭찬해 주면 "아니에요"보다는 "감사합니다"를 먼저 말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기.


보일러를 켜는 행위가 나에게는,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최소한의 자기긍정이었을 것이다. 떠나고 또 떠나 지구상의 온갖 마을을 부랑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인정했듯이, 더 이상 그만 춥고 싶어서 화가 날 지경까지 가서야 내 집에 훈기를 피워 올린 내가, 조금 늦은 것도 같고 여전히 한구석은 불편하지만, 그제야 알아낸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변명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오늘은 글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유독 내가 누린 따뜻한 시간들이 다시금 죄지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어서, 글이 나로 하여금 그날의 깨달음을 필사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마무리하려 하는데 긴 글을 쓰고도 아직 뜨겁지 못한 두 손이 부끄럽다. 겨울의 끝자락, 나는 어떤 다짐으로 마음속의 뱀들을 몰아내야 할까. 내 부끄러움을 먹고 자라나는 이 뱀들, 태동하는 봄과 함께 꿈틀대는 새 뱀들, 얼음 속에서 잠자다 깨어난 묵은 구렁이들…… 뭐가 됐든 마음속을 휘젓다 보면 호수에 남은 살얼음들은 용해되어 사라지고 한때 내가 있던 자리 또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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